박해받던 중동 기독교도의 더 우울한 크리스마스…"두렵다"
트럼프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에 축제는커녕 더욱 위축
(서울=연합뉴스) 민영규 기자 = 중동에 있는 기독교도는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있다.
가뜩이나 이슬람교도가 압도적인 중동에서 박해받으며 살고 있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다고 선언한 후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공격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주말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탄생지로 믿는 베들레헴의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에서는 축제의 흥겨움이 사라지고 있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첼 사바 전 예루살렘 대주교는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서안에 모인 군중 앞에서 "압제자들이 우리에게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주지 않기로 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에게 '예루살렘은 너희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중동 전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기독교도의 반대가 확산하고 있으며 다음 주 박해받는 기독교도 보호를 명문으로 중동을 방문하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어색한 반발에 부딪힐 것이라고 WP는 전망했다.
기독교 오리엔트정교회의 일파인 이집트 콥트교회 수장 타와드로스 2세는 애초 20일로 예정했던 펜스 부통령과의 접견을 취소했다.
이라크 갈대아교회도 최근 "백악관의 결정은 지역의 폭력과 극단주의를 촉발할 위험이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에 유엔 결의를 존중하라고 요구했다.
기독교도가 전체의 12%를 차지해 펜스 부통령이 방문하기로 한 베들레헴 서안에서는 종교 지도자들이 지난주 백악관 발표에 항의하며 크리스마스트리의 불을 꺼버렸다.
베들레헴과 예루살렘 사이에 있는 이스라엘 치안 벽에는 붉은색 스프레이로 "펜스 부통령, 당신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글이 적혔다.
팔레스타인 기독교도는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기독교 복음주의가 고향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권리와 요구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가자지구, 예루살렘, 서안에 있는 팔레스타인 인구 가운데 2% 미만이 기독교도로 추산된다.
베들레헴의 성공회 목사 미트리 라헵은 "위험에 처한 소수 기독교도에 관해 얘기할 때 이슬람국가(IS) 무장세력의 위협을 받는 이라크와 다른 지역에 관해서만 얘기하지,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기독교도의 문제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안의 가톨릭 신부 자말 카데르는 "백악관이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파벌주의에 불을 붙이고, 극단주의자들에게 기독교도를 공격하는 핑계를 주는 게 아닌지 두렵다"고 말했다.
카데르 신부는 "특히 기독교도들에게 폭력을 피하라고 당부하고 있지만, 젊은이들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대응할지 확신할 수 없어 걱정스럽다"고 현지 분위기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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