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살아남은 것은 개와 맺은 동맹 때문이었을까

입력 2017-12-14 14:48
수정 2017-12-14 16:21
인류가 살아남은 것은 개와 맺은 동맹 때문이었을까

팻 시프먼, '침입종 인간'서 "네안데르탈인, 현생인류 등장으로 멸망"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짝이 되는 동무'라는 뜻의 반려(伴侶)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동물이 개다.

최시원 사건을 비롯해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결 차가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개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지금은 애완의 영역에 묶여 있는 개가 수만년 전에는 인류라는 종 전체의 운명을 좌우한 존재였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 국내에 출간됐다.

동물고고학과 화석생성학에서 여러 업적을 남긴 미국의 고인류학자, 팻 시프먼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가 집필한 책 '침입종 인간'(푸른숲 펴냄)이다.

책은 유라시아를 지키던 네안데르탈인이 갑작스럽게 절멸하고, 아프리카에서 보잘것없는 상태로 나타나 유럽으로 막 넘어온 현생인류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늑대-개를 주목한다.

책이 먼저 전제하는 것은 현생인류가 '침입종'이라는 점이다.

침입종은 한 지역에 원래부터 살았던 자생종(native species)이나 특정 지역에서만 진화하고 그곳에서만 관찰되는 고유종(endemic species)과는 다르다. 새로운 지역에 도착해 개체군으로 엄청난 수를 불리는 이들이 바로 침입종이다. 인간은 지구에 출현했던 모든 생물종을 통틀어 가장 침입적이고 동시에 환경을 바꿔버리는 능력이 뛰어난 침입종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현생인류가 4만 년 전 처음 유라시아에 발을 디딘 이후 각자 영역을 구축하며 잘 살던 최상위 포식자들, 즉 네안데르탈인과 동굴사자, 동굴 하이에나, 동굴곰이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저자는 2009년 미예제 거몽프레가 이끄는 벨기에 연구팀의 개·늑대 연구 결과를 주목한다. 이 책을 집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연구이기도 하다. 거몽프레 연구팀이 동물 화석을 연대 측정한 결과 최초 구석기 시대로 판별된 개의 화석이 3만2천 년 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개의 가축화를 이끈 이들이 기존 가설처럼 9천 년 전 신석기 시대 농부가 아닌, 훨씬 이른 시기의 수렵 채집인이었음을 시사한다.

"나는 독특하고 특이한 늑대-개 집단의 존재가 이 시기 유라시아에서 일어났던 여러 이상한 사건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저자는 갯과 동물 미토콘드리아 DNA 게놈 분석, 늑대-개 표본 분석, 현대 사냥에 개를 투입하는 실험 등을 총체적으로 분석하면서 먼 옛날 늑대-개 집단의 역할을 추정한다.

늑대-개는 무엇보다 인간이 생태계를 '착취'하는 데서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더 다양한 먹잇감을 높은 성공률로 사냥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늑대-개는 포식자들로부터 짐승 사체를 지키고, 사냥 간 남성들을 대신해 여성과 아이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맡았다.

늑대-개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러한 길들이기, 가축화는 늑대-개에게도 다른 육식동물과의 경쟁에서 자유롭게 했다는 점에서 득이 됐다는 게 시프먼의 주장이다. 인간과 늑대-개 동맹은 서로 이익이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인간이 동물을 처음으로 가축화한 것은 인간 진화 과정 중에서도 커다란 도약이었다"라면서 "최초로 도구를 발명한 것과 맞먹는다"고 주장한다.

조은영 옮김. 진주현 감수. 388쪽. 1만8천500원.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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