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도피 범죄자 47명 전세기로 집단송환…국내 첫 사례(종합)

입력 2017-12-14 16:59
수정 2017-12-14 18:31
필리핀 도피 범죄자 47명 전세기로 집단송환…국내 첫 사례(종합)



경찰, 필리핀 현지에서 국적기에 태워 호송…오후 인천공항 도착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한국으로 들어오는 '제1관문' 인천국제공항. 이곳에서는 14일 이른 시각부터 경찰청 외사국 직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바삐 오가며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오후 4시 도착 예정인 필리핀발 국적 항공기다. 해당 항공기에는 범죄를 저지르고서 필리핀으로 도피했다 붙잡혀 송환되는 피의자 47명이 탑승했다. 일반 승객은 전혀 없는, 오로지 범죄자 호송만을 위한 전세기다.

흉악범 전용 호송기 공중납치 사건을 다룬 영화 '콘에어'와 흡사하게 범죄자를 외국에서 항공기로 집단 송환하는 첫 사례가 한국에서 나왔다.



현지에서 외국인 수용소에 수감돼 있던 피의자들은 이날 차량 20대로 마닐라 국제공항까지 호송된 뒤 전용 출국심사대를 거쳐 호송기인 국적 항공기에 탑승했다. 국적기는 국제법상 한국 영토여서 탑승 직후 체포영장이 집행됐다.

전국에서 이들의 사건을 직접 수사하던 형사 120명이 여러 차례 예행연습과 교육을 거쳐 호송관으로 참여했다. 기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좌우 3개씩 배치된 좌석에는 가운데 피의자가, 좌우에는 형사들이 앉았다.

수갑을 찬 피의자들은 체념한 듯 비행 내내 아무 말 없이 좌석에 앉아 있었다. 식사는 샌드위치가 제공됐고, 형사를 동행해 화장실에 다녀오기도 했다.



경찰청은 필리핀으로 도주한 국외도피 사범이 가장 많고, 필리핀에 거점을 둔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이나 사이버 도박 사이트 운영 등 범죄가 증가하는 점을 고려해 지난 9월부터 필리핀 당국과 범죄자 집단송환을 협의해 왔다.

경찰에 따르면 올 한해 필리핀으로 도피한 한국인 범죄자는 지난달 말 기준 144명으로, 전체 국외도피 사범(485명)의 29.7%에 달한다. 필리핀 현지에서 신병이 확보돼 외국인 수용소에 수감 상태인 인원만 90여명이다.

경찰은 이들을 한국 법정에 세워 죄에 상응한 처벌을 받게 할 필요가 있고, 열악한 현지 외국인 수용소 여건을 고려하면 장기간 수용으로 질병에 걸리는 등 피의자 인권침해 우려도 있다고 판단해 집단송환을 추진했다.

이날 송환되는 피의자 47명은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최상위 수배등급인 적색수배 대상자 11명을 포함해 보이스피싱(28명) 등 사기 사범 39명과 마약·폭력·절도 사범 등이다.

이들 가운데 사기 사범들이 저지른 범죄의 피해액은 460억원에 이른다고 경찰은 전했다. 한국 경찰청 소속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처리 전담 경찰관)와 현지 사법기관 공조로 일망타진된 보이스피싱 조직원 21명도 이날 송환됐다.

제3국에서 폭력범죄를 저지른 한 피의자는 1997년 11월 필리핀으로 도피한 뒤 약 19년 만에 국내로 끌려와 마침내 처벌을 받게 됐다.



송환 대상자 검거에는 현지에 파견된 한국 경찰관들의 기여가 컸다.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소속 경찰 주재관과 코리안데스크들은 현지 한인사회를 탐문하고 증거를 수집해 필리핀 당국 수사와 검거를 지원하고, 필리핀 법무부·이민청과 집단송환 절차도 협의했다.

경찰은 이번 집단송환을 계기로 필리핀 도피 사범을 신속히 송환할 수 있도록 필리핀 당국과 협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도 외국 경찰과 적극적으로 공조해 범죄자가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반드시 검거돼 처벌받는다는 원칙을 확립하겠다"고 말했다.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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