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앨라배마 '성추문' 심판…트럼프 국정운영 힘빠진다

입력 2017-12-14 01:47
수정 2017-12-14 14:21
美 앨라배마 '성추문' 심판…트럼프 국정운영 힘빠진다



상원 51석으로 줄어 反트럼프 여론·정책 좌클릭 요구 커질듯

(워싱턴=연합뉴스) 이승우 특파원 = 미국 공화당이 텃밭인 앨라배마 주(州)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무려 25년 만에 민주당에 자리를 내주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됐다.

'미성년자 성추문'에 휩싸인 공화당 로이 무어 후보 지원에 막판 올인한 만큼 직접적인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이 지역 임시 상원의원인 루서 스트레인지 의원을 지원했지만, 무어 후보가 성 추문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자 선거일을 얼마 안 남기고 트위터 글과 인근 지역 지원 유세, 로보콜(자동녹음전화) 등으로 파상 지원을 했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3일(현지시간) "더그 존스의 뜻밖의 승리는 분열과 내홍에 신음하는 한 정당에 엄청난 타격이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굴욕적인 패배였다"고 보도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 그래도 지지부진했던 주요 국정과제를 추진할 동력 약화에 직면한 상황이다.

현재 공화당 상원 의석이 52석에서 1석 줄면서 겨우 과반을 맞추는 수준이 됐다. 공화당에서 단 1명이라도 반대하면 법안을 통과할 수 없는 구조가 되면서 오바마케어(현행 건강보험법) 폐기와 반(反)이민 정책, 멕시코 장벽 건설 등의 핵심 입법과제 추진에 자칫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다만 일단 상원을 통과한 감세법안의 입법 완료에는 이번 선거 결과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의 상원 사령탑인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는 보선 직전 무어의 패배를 미리 염두에 둔 듯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올해 상원 회기가 끝날 때까지 스트레인지 의원이 계속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공화당 지도부에 대해 더글라스 존스 당선인의 의원 등록을 빨리 승인하라고 재촉하고 나섰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13일(현지시간) 트위터에 글을 올려 "상원 다수당 지도자인 미치 매코널이 앨라배마 주민의 뜻을 경청해 더그 존스를 지체 없이 의석에 넣을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리처드 버 상원의원을 비롯한 공화당 일각에서는 의석이 1석 줄어든 것이 오히려 공화당 지도부의 원내 운영을 원활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입법 마지노선에 걸렸다는 위기감이 오히려 분열을 막아줄 것이란 기대인 셈이다.

공화당의 이번 패배로 외부에서 '반(反)트럼프' 여론에 힘이 실리는 것은 물론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국수주의적 국정 노선과 우측으로 쏠린 일방주의적인 정책 기조를 수정하라는 요구가 고개를 들 가능성이 커졌다.

공화당 내 대표적인 반트럼프 인사인 밥 코커 상원의원은 전날 밤 NBC와 인터뷰에서 무어 후보의 패배 소식에 대해 "미국에 멋진 밤"이라고 평가했다.

의회전문지 더힐은 "무어의 패배는 이 주에서 클린턴을 거의 30%포인트 차이로 물리쳤던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깜짝 놀랄 만큼의 모욕"이라며 "이 결과는 공화당 의원들이 스스로 정치적 미래를 보호하려고 트럼프 대통령을 멀리하려는 움직임을 가속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기류는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던 스티븐 배넌이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패배자(loser)'로 불리는 것과도 연관돼 있다.

공화당 기득권 세력과 대별되는 '우파 신주류'로 분류됐던 배넌은 이번 선거로 입지를 크게 상실했다. 일부에선 현실 정치권에서의 퇴출까지 거론되고 있다.

앨라배마 상원의원 후보 경선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기득권 인사들의 뜻대로 스트레인지 의원을 밀었는데도, 이를 거역하고 무어 후보를 지원하면서 결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처를 안긴 데 대한 '괘씸죄'가 적용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향한 비난을 배넌에게 돌리면서 '희생양'을 만들려는 정치적 셈법을 쓸 가능성도 작지 않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은 스트레인지지를 밀었고 무어가 질 줄 알았다는 트윗을 남김으로써 슬쩍 발을 뺐다.

실제로 공화당 내부에서는 배넌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앤서니 스카라무치 전 백악관 공보국장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앨라배마 보선 결과에 대해 "배넌이 졌기 때문에 어제는 미국에 좋은 날이었다"고 평가했다.

피터 킹 하원의원은 CNN 인터뷰에서 배넌에 대해 "이상한 '대안 우파'(alt-right) 시각을 보여주면서 정부와 정치 절차 전체를 망치고 있다. 우리가 정치에 필요로 하는 타입은 아니다"라며 출당 조치를 촉구했다.

애덤 킨징어 하원의원은 트위터에서 배넌을 '리노(RINO·이름만 공화당)'라고 칭하면서 "도덕적으로 부적절한 그의 전략은 여기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매코널 원대대표의 전직 참모인 로비스트 빌리 파이퍼는 "배넌은 독이고, '트럼프 어젠다'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의 이번 보선 패배는 내년 중간선거 전망에도 먹구름을 드리웠다.

이미 지난달 '미니 지방선거'로 불린 버지니아와 뉴저지 주지사 선거와 뉴욕시장 선거에서 완패한 데 이어 후보만 내면 된다는 '텃밭'에서마저 무너진 것은 공화당에 상당한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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