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된 사우디 억만장자 왕자 재산 2.3조 증발

입력 2017-12-13 21:25
숙청된 사우디 억만장자 왕자 재산 2.3조 증발

FT "알왈리드, 재산 내놓고 석방 대신 법정투쟁 의도"

(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의 억만장자 왕자 알왈리드 빈탈랄이 지난달 초 부패 혐의로 전격 체포된 이래 그가 소유한 킹덤홀딩스(KHC) 시가총액이 20억달러(약 2조3천억원) 증발했다.

현재 킹덤홀딩스 시가총액은 85억달러(약 9조3천억원)로 알왈리드 왕자 체포 이전과 비교해 20% 급락했고, 이로 인해 알왈리드의 순자산도 20억달러 줄어든 160억달러(약 17조5천억원·포브스 기준)로 쪼그라들었다고 영국 경제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3일 보도했다.

알왈리드는 사우디 실세 왕자인 모하마드 빈살만 알사우드(32) 제1 왕위계승자 겸 국방장관이 지난달 초 시작한 반부패 숙청 드라이브로 전격 체포된 왕자들과 전·현직 장관 수십명 가운데 한 명이다.

그가 체포된 지 1개월 넘게 지났지만, 알왈리드 왕자나 킹덤홀딩스 투자팀과 오랜 기간 함께 일해온 은행인들은 왕자의 운명과 킹덤홀딩스에 미칠 영향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탈랄 알마이만 킹덤홀딩스 최고경영자(CEO)는 왕자가 체포되기 이전에 이미 회사 경영에서 역할을 줄여왔고, 다른 경영진이 흔들림 없는 책임을 이행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현지 은행가에선 왕자의 부재로 킹덤홀딩스의 의미 있는 기업활동이 멈춘 것으로 보고 있다.

알왈리드 왕자의 지분이 95%인 킹덤홀딩스는 그의 핵심 투자수단 역할을 해왔다.

FT는 사우디 당국의 수사에 관해 설명을 들은 소식통을 인용, 알왈리드 왕자가 횡령 의혹을 받는 재산을 국가에 내놓고 석방되는 것보다는 무죄를 주장하면서 법정 다툼을 벌일 의도라고 전했다.

다만 알왈리드 왕자와 가까운 한 은행인은 그가 자유를 얻고자 당국과 타협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한 은행인은 알왈리드 왕자의 재산이 킹덤홀딩스 지분 외에도 수도 리야드 등 에 광범위한 부동산들이 있다며 이들 부동산과 미디어 그룹 로타나(Rotana) 같은 사우디 현지 기업들, 그리고 보유 현금 등이 당국과 합의의 대가가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왕자뿐만 아니라 그의 측근들도 반부패 수사 확대에 대비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왕자와 가까운 한 임원은 체포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해외출장에서 복귀하지 않고 있고, 또 다른 임원은 재산을 걸프 이외 지역으로 옮기는 계획을 짜고 있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알왈리드가 1980년 설립한 킹덤홀딩스는 현재 트위터, 포시즌 호텔, 유로디즈니, 사우디 저가항공 플라이나스 등 국내외에 걸쳐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알왈리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부도 위험에 처한 미국 은행 씨티그룹의 당시 최고경영자(CEO) 비크람 판디트를 공개 지지하고 보유 지분을 4%에서 5%로 높이면서 '아랍의 워런 버핏'이라는 닉네임을 굳혔다. 그는 나중에 이 지분을 킹덤홀딩스에 넘겼다.

하지만 도움이 절실한 지금 알왈리드 왕자에게 손을 내미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FT는 전했다.



jungw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