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눈앞의 현실로 한 걸음 더 다가온 북미대화

입력 2017-12-13 20:43
[연합시론] 눈앞의 현실로 한 걸음 더 다가온 북미대화

(서울=연합뉴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2일(현지시간) 북한과 전제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겠다고 밝혀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에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지 주목된다. 틸러슨 장관은 이날 워싱턴D.C.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과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이 공동주최한 '환태평양 시대의 한·미 파트너십 재구상' 세미나에서 "우리는 북한이 준비되면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우리는 전제조건 없이 기꺼이 북한과 첫 만남을 갖겠다"고 했다. 일단 만나서 북한이 원한다면 날씨 얘기만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첫 만남을 갖고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의의가 있는 만큼 '만남을 위한 만남'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미리 의제를 정하지 않고 가벼운 형식으로 대화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비핵화 문제를 다루겠다는 구상인 듯하다. 대화하려면 핵무기 프로그램 동결로는 부족하고 이를 되돌릴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미국의 기존 입장을 고려할 때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으로 보인다.

틸러슨 장관이 이런 제안을 하게 된 데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을 조건으로 내걸고서는 대화를 시작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 북한이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한 이후 미국 내에서 대북 선제타격론이 고조되는 등 강경론이 힘을 얻는 상황에서 나온 마지막 외교노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이 대화의 문턱을 낮춘 것도 아니고 아예 없앤 만큼 북한이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그만큼 커졌다고 하겠다. 미국의 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 는 "틸러슨 장관이 북한과의 협상에 문을 활짝 열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래 평양을 향한 가장 분명한 외교적 접근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CNN 방송은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초대장을 북한에 보낸 것"이라고 했다. 미국 외교 사령탑이 내놓은 제안이지만 몇 가지 면에서 확인할 부분은 있는 것 같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의 조율된 입장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틸러슨 장관은 세미나 기조연설 뒤 질의-답변 과정에서 이런 제안을 밝혔다고 한다. 정교하게 준비해 발표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는 바뀌지 않았다"는 모호한 성명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리틀 로켓맨'과 협상을 시도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며 틸러슨 장관을 공개적으로 면박을 준 적이 있고, 최근에는 대북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경질될 것이란 얘기도 도는 상황이다. 하지만 틸러슨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과 전혀 교감 없이 이런 제안을 했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발표 형식이나 수위 등에 대한 조율이 없었을지 모르나 북한과의 조건없는 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교감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는 듯하다.

북한은 화성-15형 발사를 계기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러시아 등을 통해 '핵보유국 인정' 등 대화의 조건을 흘리며 북미 대화국면을 모색하는 듯한 행보를 해왔다. 최근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의 방북을 허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틸러슨 장관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 제안은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우리 외교·안보 당국도 북미 직접대화 가능성을 눈앞으로 다가온 현실로 보고 준비를 해야 한다. 틸러슨 장관이 "만약 대화 도중 시험이나 추가 도발을 한다면 대화는 어려워질 것"이라며 추가 도발 중단을 절대적 조건으로 못 박은 만큼 적어도 북미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틀 기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북미대화를 이용해 시간 끌기를 하며 기존 제재와 압박의 틀을 깨려 할 가능성 또한 상존한다. 또 한미연합훈련 중단, 미군철수 등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하며 핵을 인정받는 어중간한 타결을 시도하고 남남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북미 직접 대화가 우리에게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한반도 문제가 결정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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