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총무원장 "정치 집단화한 종단…수행 가풍 되살리겠다"

입력 2017-12-13 16:44
설정 총무원장 "정치 집단화한 종단…수행 가풍 되살리겠다"

"선거제도는 불교 정신에 위배…대안 모색할 것"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설정 스님은 "수행자를 뒷받침해야 할 종단이나 사찰이 선거제도로 인해 정치 집단화했다"며 "선거제도의 대안을 모색하고 사라진 수행 가풍을 되살리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취임한 설정 스님은 13일 견지동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에서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설정 스님은 "절이라는 곳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자기 수행을 하는 공간으로서, 그렇지 못하다면 절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면서 "하지만 20년 만에 종단 중앙부로 돌아와 보니 수행자들을 뒷받침해야 할 종단이 너무 정치적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종단을 정치 집단화하고 타락시킨 근본 원인으로 선거제도를 꼽았다.

찬반을 나누는 선거제도로 인해 적과 동지로 갈려 승단의 화합이 깨지고 온갖 권모술수와 중상모략이 난무하게 됐다는 것이 스님의 견해다.

"선거제도는 갑을과 여야를 나누고, 보이지 않는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을 만든다는 점에서 불교의 화합 정신에 위배됩니다. 간선제인 현행 총무원장 선출방식의 대안으로 제기됐던 직선제 역시 반목 집단을 더 확대시킬 뿐이죠. 부처님은 민주적인 토론을 거쳐 의견일치를 보는 만장일치제를 주장했습니다."

설정 스님은 "토론과 합의를 통해 불교의 본래 가르침에 맞는 최선의 선출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며 "현행 총무원장 선거제는 내가 1994년 개혁회의 법제위원장 재직 당시 만들어진 제도인 만큼 책임을 지고 고치겠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또 "종단이 반목을 끝내고 대화합을 이뤄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대탕평'의 시간을 갖겠다"며 최근 몇 년간 논의돼 온 멸빈자(승적 박탈자) 사면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1955년 수덕사에서 사미계를 받은 설정 스님은 1983년 조계종 비상조치에 의해 탄생한 '비상종단운영회의'에 참여했고, 1994년 종단개혁 당시 조계종단 개혁회의 법제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몇 차례에 걸쳐 종단의 개혁에 참여했다.

1994년부터 4년간 중앙종회 의장을 맡았던 스님은 2009년 수덕사 제4대 방장으로 추대된 이후에는 산중에서 후학 양성에 힘써왔다.

그는 "19년간 선방에서 대중들과 함께 살았던 때가 '요순시대'였다"고 표현하면서 "여기 와보니 만나야 할 분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하고 건성으로 넘길 수 있는 게 없다"며 웃었다.

지난달 1일 취임한 스님은 포항의 지진 피해 현장을 직접 방문해 이재민을 위로했고, 세월호 미수습자 합동추모식에도 참석했다. 또 파주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추모의 집'을 찾아 무연고 사망자들의 영령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는 "20년간 산중에 있다가 나온 것은 평생 부처님 은혜를 입고 살았던 사람으로서 부처님과 중생에게 이를 조금이라도 갚으려는 생각에서였다"며 "중생뿐 아니라 환경까지 자유롭고 윤기 나는 삶을 지향하는 불교의 기본 정신에 입각해 불교가 사회적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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