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물동량 2천만 시대] ③ 양적 성장 못따르는 내실 어떻게

입력 2017-12-24 07:04
[부산항 물동량 2천만 시대] ③ 양적 성장 못따르는 내실 어떻게

하역료 외국항만 절반 이하…연관 서비스 업종 수익성 악화로 신음

양적 성장 더불어 부가가치 높이고 합당한 임금받는 구조 만들어야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부산항이 그동안 양적으로는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내실은 이를 따르지 못한다.

싼 비용을 앞세워 컨테이너 물량 늘리기에 치중한 탓에 하역료와 각종 서비스 요금이 외국 항만에 비해 한참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많은 항만 종사자는 '싸구려 항만'이라는 자조 섞인 표현까지 써가며 "이제는 국격에 맞게 제값 받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산항의 하역료는 유럽, 미주, 싱가포르, 일본 등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된다.



부산항의 하역료가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항만업계는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인프라가 채 갖춰지기도 전에 서둘러 개장한 신항이 활성화하지 않자 각종 인센티브까지 제공하며 북항을 이용하는 선사들을 신항으로 옮기는 정책을 썼다.

그 과정에서 하역료가 떨어지는 등 부작용은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

신항의 운영사들이 물량 유치를 위해 하역료를 내리고 북항 운영사들이 물량을 빼앗기지 않으려 더 내리는 식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게다가 21개 선석에 불과한 신항을 5개 회사가 나눠서 운영하도록 함으로써 신항 운영사들 사이에서도 하역료 인하 경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전반적인 하역료 수준이 10여년 전과 비교하면 반 토막이 났다.

신항이 3개 선석 운영을 시작한 2006년 1천203만개이던 부산항 전체 물동량이 올해 2천50만개로 늘었지만 하역료 수입은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다국적 터미널 운영사(GTO)들의 매출액 대비 이익률이 평균 35%인 것과 대조적으로 부산항의 운영사 3분의 1가량은 적자 상태이고 흑자를 내는 운영사의 이익률도 외국항만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문다.

상당수 연관 서비스업종들은 성장의 혜택을 누리기는커녕 위기를 맞고 있다.



부두에 도착한 선박이 움직이지 않도록 붙들어 매는 줄잡이, 배에 실린 컨테이너가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고박업, 화물의 종류와 수를 확인하는 검수, 환적화물을 부두 간에 옮기는 운송업 등도 선사들의 비용인하 압박에다 업체 간 과당경쟁 등으로 수익성이 날로 악화하고 있다.

업체들의 규모가 대부분 영세한 데다 경영상태가 좋지 못하다 보니 종사자들의 임금 수준도 열악하다. 일부 업종은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부산항만공사 실태조사에서 드러났다.

트레일러로 30t이 넘는 환적 컨테이너를 부산항 부두 사이에 옮겨주고 받는 돈이 최저 2만원대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하다.

참다못한 영세업체들이 운송료 현실화를 요구하며 운송거부를 선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선사들이 화주에게서 청소비 등을 받으면서도 청소가 안 된 컨테이너를 실어줘 트레일러 기사들이 아무런 대가도 못 받고 방호 장비도 없이 빗자루와 물걸레로 청소해야 하는 등 횡포에 시달리지만 누구도 나서서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고된 노동과 열악한 여건에 임금마저 낮다 보니 젊은 인력이 유입되지 않아 대다수 업종의 종사자 평균 연령이 5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에 이를 만큼 고령화가 심하다.

줄잡이업계 관계자는 "근로자 대부분이 60대로 머지않아 일할 사람이 모자라 항만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며 "젊은 사람들이 일하고 싶은 항만이 되도록 합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게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산항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외국 항만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진다.

동명대학교 우종균 교수에 따르면 피고용자 보수, 영업이익 등 다양한 지표를 이용해 산출한 부산항 전체 부가가치 규모는 연간 6조원 정도로 싱가포르의 35%,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40%, 중국 상하이의 34%에 불과하다.

항만연관산업의 부가가치(1조3천억원)는 더욱 낮아 싱가포르의 23%, 로테르담의 15%, 상하이의 25%밖에 안 된다.

선박 운항과 선원생활에 필요한 선용품 시장 규모도 싱가포르 등 외국 항만에 비해 훨씬 작다.



대형선박 수리조선소도 없어 국적 선사들마저 다른 나라에서 배를 수리하느라 매년 막대한 국부가 유출된다.

항만업계는 물동량 2천만개 시대를 맞아 정부와 항만공사가 부산항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연관 업종 종사자들이 합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정책전환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산항만공사도 양적 성장과 더불어 내실 다지기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올해 처음으로 항만연관기업 4천550곳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여 실태를 파악하고 전문가들이 참여한 워킹그룹을 통해 육성 방안을 모색하려고 애쓰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실태조사를 통해 드러난 연관 업종의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며 "해양수산부, 부산시 등과 협조해 제도개선 등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와 더불어 연관 업종 스스로 인수합병이나 협동조합 결성 등으로 규모를 키워 선사 협상력을 높이고 과당경쟁을 자제하는 등 자구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lyh950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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