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대신 비트코인 사는 개미들…증시자금 잠식 우려
빗썸 거래 늘때 코스닥은 줄어…"가상화폐 열풍이 코스닥 조정의 한 원인"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최근 과열 양상을 보이는 가상화폐 시장이 국내 증시자금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단타 투자로 수익을 내려는 개미 투자자들이 가상화폐 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코스닥 등 주식시장에서 돌아야 할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직장인 이모(50)씨가 단적인 예다. 전산 회사에 다니는 그는 여윳돈을 투자할 곳을 찾다가 최근 가상화폐 시장에 발을 들였다.
이씨는 "처음에는 코스닥시장이 뜬다는 얘기에 주식에 투자하려 했는데 친구의 권유로 비트코인을 샀다"며 "다행히 적지 않은 수익을 올렸다"고 말했다.
꾸준히 주식투자를 해온 주부 유모(37)씨도 비트코인 투자를 저울질하고 있다.
유씨는 "지난달 하순부터 코스닥에 조정 장세가 이어져 영 재미를 못 보고 있다"며 "수익률이 지지부진한 주식 대신 비트코인에 투자해볼까 싶은데 최근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증시에서 가상화폐 시장으로 옮겨가거나 이동 가능성이 있는 자금이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가상화폐와 코스닥시장 거래규모를 보면 증감 추세의 방향이 미묘하게 엇갈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올해 1월 3천억원 수준이던 월별 가상화폐 거래금액이 11월에는 그 182배가 넘는 56조2천944억원으로 불어났다.
올해 코스닥시장 평균 월별 거래대금 68조7천96억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규모다.
빗썸의 월별 거래금액이 특히 큰 폭으로 늘어난 시기는 올해 5월과 8월이었다. 4월 6천434억원에서 5월 5조2천679억원, 7월 11조9천229억원에서 8월 24조9천999억원으로 크게 뛰었다.
같은 시기 코스닥시장의 월별 거래대금은 4월 69조3천674억원에서 5월 55조2천119억원으로, 7월 61조5천834억원에서 8월 59조1천404억원으로 각각 줄었다.
코스닥지수가 조정을 받던 지난 8월에는 빗썸의 19일 하루 거래대금이 2조6천18억원으로 같은 날 코스닥시장 거래액 2조4천357억원을 웃돌기도 했다.
증시 전문가들도 증시자금이 가상화폐 시장으로 빠져나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오석태 한국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열풍이 코스닥 조정의 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오 수석은 "가상화폐 시장은 진입장벽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주식처럼 개별 종목을 분석할 필요도 없다 보니 코스닥시장보다 더 개인투자자 위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인다"며 "코스닥 대비 변동성이 크다는 점도 개미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임상국 KB증권 종목분석팀장도 "가상화폐 열기가 증시자금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것은 맞다. 개인투자자들이 굴리던 자금이 일정 부분 가상화폐 시장으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코스닥시장에 주로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은 투기성향이 강해 단타 매매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주식시장보다 변동성이 훨씬 크고 24시간 매매가 가능한 가상화폐 시장으로 흘러들어 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될지는 결국 정부 정책에 달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임 팀장은 "가상화폐 인기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고 전면 규제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현재의 열기가 쉽게 식지는 않을 듯하다. 다만 정부가 가상화폐 규제를 강화하고 중소·벤처기업과 코스닥시장 활성화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내놓는다면 일정 부분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도 "비트코인은 화폐라기보다는 금과 같은 자산에 가깝지만 펀더멘털(기초여건)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그 가치에 의문의 여지가 많다"며 "정부의 코스닥시장 활성화 정책이 명확해지면 개인투자자들이 다시 증시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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