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의 틀에 갇힌 '경계인' 윤이상과 동갑내기 윤동주 삶 조명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열어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윤이상의 곡에서 한국의 전통을 들을 수 있는 오보에 연주를 들어보겠습니다."
12일 오후 5시께 서울 신촌동 연세대 문과대학 100주년 기념홀에서는 '경계인'으로 불리는 작곡가 윤이상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새로운 음악으로 가는 길: 윤이상의 무악'이 상영됐다.
윤동주·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연세대 인문학연구원이 주최한 학술대회 '문자와 소리에 담긴 고향'의 첫 순서로 마련한 상영회였다.
윤이상은 이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에서 '자신의 전통을 지키라'는 스승 보리스 블라허의 가르침에 따라 피리·생황 등 한국 전통악기 소리를 오케스트라로 재현하려 한 과정을 설명했다.
연세대 교수·학생과 다른 연구자들, 일반인 등 학술대회 참석자 50여명은 숨을 죽이고 윤이상의 곡 연주와 이 곡에 숨은 한국적 전통에 대한 지휘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윤이상의 음악은 서구에서는 한국의 전통이 깊이 밴 것으로 평가받지만, 그 음악이 정작 한국에 수용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고 이날 발표를 맡은 서울대 강사 이희경씨는 설명했다.
이씨는 '미완의 귀향, 윤이상 음악의 한국 수용'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윤이상 선생이 이른바 '동백림(東伯林·동베를린) 사건'으로 간첩으로 몰린 이후 '친북인사'라는 이데올로기의 틀에 갇혀 그의 음악은 제한되고 금지되기 일쑤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의 음악에 다가가는 것을 어렵게 만든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윤이상에게 각인된 정치적 이미지"라며 "음악을 들어보기도 전에 이미 형성된 선입견들이 음악을 소리 자체로 경험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는 "누군가는 윤이상이 '한국적'이 아니라고 문제 삼고, 누군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면모'를 찾아내 추앙한다"며 '경계인'인 윤이상의 정체성도 그 음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조기 대선으로 선출된 대통령 부부의 윤이상 추모를 계기로 어느 때보다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1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으리만큼 성대한 행사가 치러졌다"며 "이제 그가 남긴 음악적 유산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과제가 남았다"고 강조했다.
윤동주 연구자인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고백과 너머의 시인 윤동주'라는 발표에서 윤동주를 '저항시인'으로 획일화하여 읽는 대신 '사랑'과 '부끄러움'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와 거기서 비롯된 '저항'이라는 행위로 함께 기억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윤이상의 가곡 '피리' 클라리넷 연주와 윤동주의 시 '서시', '자화상', '소년'을 가사로 한 가곡 연주도 이어졌다.
조대호 연세대 인문학연구원장은 인사말에서 "동갑내기라는 게 생소할 만큼 다른 시대를 산 윤이상과 윤동주를 한 자리에 불러모아 둘 사이 연관성을 살펴보는 것이 오늘 학술대회의 목적"이라며 "아직은 단순히 두 사람의 삶을 단순히 나란히 늘어놓는 데 그치겠지만 그런 병치 작업조차 한국 예술을 전체적으로 그리는 데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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