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 제약이 사라진 세계화 시대, 다시 지리에 주목하다
로버트 카플란 '지리의 복수'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2005년 책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세계화를 이야기하며 지리적 제약을 뛰어넘어 평평한 세계를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우파 언론인이자 정치평론가인 로버트 카플란은 신간 '지리의 복수'(미지북스 펴냄)에서 "제트기와 정보 시대에 접어들면서 잃어버린 시공간에 대한 감각을 되찾아야 한다"며 세계화의 시대, 지리의 중요성을 다시 주장한다.
그는 지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지리 결정론'을 경계한다.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인간의 행동은 지리가 부과한 물리적 요소들의 제약을 받게 되다는 점을 지적하며 지리가 인간사의 행로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영원히 지속할 것 같은 현재의 강력한 권세도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으며 영원한 것은 지도상에 나타난 인간의 입지뿐이라는 것. 지리는 서서히 작용하는 역사의 '장기 지속' 요소로 감지하기는 어렵지만 몇백 년간 기간을 조망하면 그 역할이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지리가 잊힐 수는 있지만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냉전 시기 등장한 '중부 유럽'이라는 표현은 실제 지리에 기반을 뒀다기보다는 개념적인 표현이었다. 이 표현에는 '중부 유럽' 국가들이 소련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담겨 있었고 인위적 장벽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중부 유럽' 국가들이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는 이후 '중부 유럽' 국가들이 연루된 발칸반도 전쟁이 벌어진다. 서구인들은 이때 '발칸'과 유럽 중심부 사이에 오랫동안 둘을 분리해 온 카르파티아 산맥이 존재했고 발칸은 유럽보다 옛 오스만제국이나 비잔티움 제국에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는다.
카플란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유라시아'다. 그중에서도 유럽과 러시아, 중국, 인도, 이란, 터키 같은 바다와 인접한 유라시아 주변 지대에 가중치를 부여하며 지리적 관점에서 이들 나라의 역사를 살피고 미래를 예측한다.
책의 결론은 유라시아가 중요한 시대, 미국의 대응책이다. 카플란은 몇십 년 뒤면 철도, 도로, 파이프라인들이 중앙아시아, 특히 아프가니스탄 허브를 통해 유라시아의 모든 곳을 연결하면서 유라시아가 유기적으로 통합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렇게 되면 그것에 대한 일종의 균형추로 캐나다령 북극지방에서 중앙아메리카의 밀림지대까지 유기적으로 통합된 북아메리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통합된 북아메리카의 중심은 '물론' 미국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이 멕시코와 중남미 등 주변국을 조화롭게 포섭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관련 내용도 있다. 그는 "독일과 베트남, 예멘의 사례에서 보듯 통일의 힘은 결국 예기치 않게 또 때로는 폭력적이고 매우 빠른 속도로 개가를 올릴 것"이라면서 남북도 독일처럼 통일 한국(greater Korea)을 기대하거나 적어도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경우에도 지리의 힘이 어느 시점에서 다시금 효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원서는 2012년 출간됐다. 이순호 옮김. 548쪽. 2만원.
zitron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