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시혁 "K팝 고유가치 지킬 것…방탄, 해프닝 아닌 모델 되길"(종합)
방탄소년단 '윙스 투어' 파이널 공연 기자회견…"1년은 역동적인 서사"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방탄소년단의 2017년은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역동적인 서사였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아버지'로 불리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시혁(45) 대표가 10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지난 1년간 눈부시게 성장한 방탄소년단의 성과를 이렇게 정리했다.
방 대표는 이날 열린 방탄소년단의 월드투어 파이널 공연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 참석해 "상반기 '빌보드 뮤직 어워즈' 수상이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팬덤을 확인한 계기였다면, 최근 열린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는 대중성을 높이 평가하는 무대인 만큼 한국 음악이 팝의 본고장에서도 소통할 수 있는 더 큰 가능성을 보게 한 기회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많은 분이 방탄소년단이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한 핵심 역량과 전략, 성공 비결을 묻는다"며 "성공을 이야기하기엔 이르고 간결하고 정확하게 답을 내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음악의 진정성과 대중음악이 전달하는 격려와 위로의 힘을 믿었기에 오늘의 가능성을 믿을 수 있었다"며 "방탄소년단은 진솔한 메시지를 담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들려줬고 이들이 동 세대와 교감하고 같은 성장통을 겪으면서 더 단단하게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린 문화적 폐쇄성이나 언어적 장벽을 넘어 보편타당한 메시지와 좋은 콘텐츠의 힘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무한한 잠재력을 목격하고 있다"며 "이는 과거부터 이어온 수많은 K팝 프로듀서와 가수들의 창의적인 시도가 축적됐기에 가능했다. 바람이 있다면 이를 계기로 K팝이 고유한 장르로 새롭게 진화하는 음악으로 인정받고 글로벌 세계에서 생동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한 방 대표는 1997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동상 출신으로 JYP엔터테인먼트 수석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그간 지오디(god)의 '하늘색 풍선', 비의 '나쁜 남자',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과 '내 귀에 캔디', 2AM의 '죽어도 못 보내' 등 다수의 히트곡을 낸 작곡가 출신 음반제작자다.
방 대표는 이날 '방탄소년단의 아버지'로 부르지 말아 달라는 당부를 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아티스트라는 게 누군가가 창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아버지, 아빠, 이렇게 불리는 순간 마치 방탄소년단이 객체가 되고 제가 만들어냈다는 것이 돼 제 철학과 맞지 않아 불편하다. 그리고 사실 제가 미혼"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미국에서의 방탄소년단 활약을 바라본 느낌은.
▲ 현지에서 느낀 것은 가슴에 태극기를 자수로 박은 것 같았다. 굉장히 감동적이었고 '소명 의식 갖고 집중해서 해야지', '여기서 실기했다간 역사의 죄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전 국가대표 경기도 관심이 없고 '국가라는 실체가 그렇게 대단한건가'란 생각을 어릴 때부터 갖고 산 사람인데도 말이다.
-- 데뷔 초 방탄소년단에 대해 'RM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팀'이라고 얘기했는데 가장 많은 변화와 성장을 보인 멤버는.
▲ RM이 팀의 중심이라기보다 RM을 처음 봤을 때 이런 팀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재능있는 친구를 반드시 데뷔시키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연습생 때부터 팀이 성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해왔다. 누군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은 어폐가 있는 것 같다. 변화와 성장도 어떤 멤버를 찍어서 말하기 어렵다. 7명 모두 놀라울 만큼 성장했고 저를 감동시키고 있다.
-- 방탄소년단은 더는 소년이 아니게 됐다. 소년이란 정체성을 어떻게 가져갈 생각인가.
▲ 예전에 슈가가 이런 말을 했다. 본인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피터팬 같은 얘기가 아니라 어른이 되더라도 꿈을 잃지 않고 꿈을 향해 계속 정진한다면 그건 어른이 아니라 소년이라고 했다. 전 그 말이 방탄소년단의 모습을 가장 짧게 말해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화양연화' 시리즈를 기획할 때도 제게 큰 영향을 줬던 말 중 하나다.
-- 중소기획사의 성공이란 점에서 가요계가 희망을 봤다고 한다. 제작자로서 성장 분기점이라고 체감한 곡이 뭐였나?
▲ 방탄소년단의 역사 자체가 굉장히 유기적이고 다양한 요소들이 움직이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도 놀라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어서 성장분기점이라고 찍어서 말씀드리긴 쉽지 않다. 분석해주신 분들의 의견을 종합해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지점들은 있다. '쩔어'란 노래로 해외 팬덤이 결집하며 소위 아이돌 팬덤 용어로 영업을 본격적으로 나선 계기가 됐다. 다음 '불타오르네'란 곡이 결집된 팬덤을 터지게 한 계기 같고, '피 땀 눈물'에서 좀 더 보편성, 범대중성, 이런 부분을 확보했다고 생각한다. 그 뒤에는 '빌보드 뮤직 어워즈'나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등 미국 언론이 주목한 지점들이 합쳐져서 눈덩이 굴러가듯 지금의 모습이 됐다.
-- 이런 성과가 가요계에서 어떤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하나.
▲ 아직은 더 노력해야 한다. 제가 바라는 것은 방탄소년단이 미국에서 이룬 성과를 실기하지 않고 산업 모델로서 잘 만드는 것이다. 과거 음반기획사들이 해외에서 K팝을 산업으로 만들어준 것처럼 저도 그런 역할을 해서 저희 이후 서구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획사에 시장을 열고 기회를 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만들어진 팀은 아니었는데.
▲ 여러 요인이 방탄소년단의 현재 위치를 만들었다. 처음 팀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한 것은 K팝 고유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거창한 게 아니라 K팝이라 불리는 음악이 1990년대 중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후 죽 만들어진 것은 비주얼적으로 아름답고 음악이 총체적 패키지로 기능하고 무대에서 퍼포먼스가 멋있는 음악이었다. 이것 자체가 언어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기에 '어느 나라, 어떤 문화권에 꼭 가겠다'가 아니라 K팝 고유의 가치를 지키면서 방탄소년단만의 가치를 더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멤버들이 사랑하는 힙합으로 대변되는 흑인 음악 베이스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녹여 진정성을 지켰다.
-- 방탄소년단의 음악에서 세계관을 고민한다고 들었다. 최근 'DNA' 뮤직비디오를 보면 우주로까지 세계관이 확장됐는데,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나.
▲ 만든 사람의 입으로 세계관이 무엇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고 들려주는 것은 재미있지 않은 것 같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즐기는 분들이 속 시원해지는 부분은 있겠지만, 그것이 그분들에게 최고의 즐거움인지는 모르겠다. 해석은 듣고 봐주시는 팬들 마음에 있는 것 같다.
-- 앨범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를 시작했는데 서사를 만들어갈 때 무엇을 중심에 두나.
▲ 서사의 중심, 기본 틀은 멤버들이다. 멤버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는데 멤버들의 성장, 행보, 고민을 유의해서 듣고 제가 가진 창작자로서의 방법론에 의거해 보편적으로 전달될 얘기를 생각한다. 그 결과물을 갖고 '이게 너희 고민이고 이걸 해보면 또래들이 좋아해 주지 않을까'라고 얘기하며 멤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런 식으로 서사가 만들어진다.
-- '불타오르네' 가사 중 흙수저 등 한국적인 정서가 나오는데, 아미(팬클럽명)에게 어떻게 소화가 되던가.
▲ 글로벌 아미는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본다. 적극적으로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소비해주는 분들이 자세히 번역해주면서 그 의미가 실시간으로 돌고 있다. 현상은 같고 단어만 다르기에 이 부분에 대한 공감대는 다르지 않다.
-- 방탄소년단이 추구하는 음악 방향은.
▲ 여전히 '블랙 뮤직'을 베이스로 한다는 것은 틀림없다. 많은 장르를 했지만, 예를 들어 하우스를 해도 어반 계열의 딥하우스 장르를 했다든지, 그냥 일반적으로 듣기에는 발라드에 가까운 음악이라 해도 대부분 R&B 기법을 썼다. 전세계적으로 장르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데 그런 면을 빠르게 수용하고 방탄소년단스럽게 녹이려고 한다.
-- 이 팀이 보완해야 할 점은.
▲ 전 뭘 보완하라는 타입이 아니다. 원칙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그걸 할 수 있으면 열심히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않느냐는 타입이다. 멤버들에겐 '개인보다 팀이 우선이다', '음악과 무대가 소중하지 않은 순간 아티스트이기를 그만해야 한다' 이 정도의 원칙적 이야기만 한다.
-- 미국 시장에 어떤 플랜이 있나.
▲ 방탄소년단이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미국에 진출해 영어로 된 노래를 발표하는 부분은 저희가 가고자 하는 길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K팝 가수 모두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미국 프로듀서나 미국 회사와 계약해 미국 가수가 되자는 것은 이미 K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팬들이 좋아해 주는 부분에도 '영어를 쓰라'는 없다. 제가 열심히 할 것은, 미국에서 성공하는 K팝이 방탄소년단만이 아니란 걸 보이기 위해 미국에서 좋은 파트너를 만나고 이분들과 K팝 가수가 미국 시장에서 어떻게 기능할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제2의 방탄소년단을 계획하고 있나.
▲ 이전에 말씀드린 제2, 제3이라는 것은 서구 시장에 진출하는 케이스가 방탄소년단 1회성으로 끝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방탄소년단의 후계 가수를 제가 내겠다는 뜻도 아니다. 제가 프로듀싱하지 않더라도 서구 시장에 진출하는 K팝 가수가 또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케이스가 '해프닝'이 아니라 '모델링'이 됐으면 한다. 그 모델을 통해 유사하거나 변종이거나 힌트를 얻어 다른 K팝 가수들이 해외에 많이 진출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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