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人] "자원봉사자 자긍심, 단복을 영정 사진 쓸 정도죠"
이형용 씨, 1986년부터 2018년까지 자원봉사 '그랜드슬램'
"소원이 있다면 올림픽공원에 자원봉사자 위한 작은 표식 세우는 것"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이 성공하려면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내년 대회에는 2만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평창과 강릉, 인천공항 등에 배치돼 대회를 떠받칠 든든한 기둥으로 활약하게 된다.
장년층 이상이 주축인 해외 자원봉사자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20대 대학생이 주를 이룬다.
젊은이의 패기가 필요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경험 많은 자원봉사자는 대회의 격을 한 단계 높여줄 중요한 인적 자원이다.
이형용(65) 씨는 '봉사 그랜드슬램'을 앞둔 자원봉사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패럴림픽, 1999년 강릉동계아시안게임을 했다. 한국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 덕분에 내년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으로 6개의 게임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됐다. 내년 1월에는 성화봉송도 맡았다. 6개 대회 모두에서 자원봉사하는 사람이 3∼4분 정도 계신 거로 안다. 그중에서도 성화봉송까지 경험한 건 제가 유일하다"고 소개했다.
스키를 40년 넘게 탈 정도로 스포츠 애호가인 이형용 씨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당시 읽은 신문기사에서 자원봉사자라는 존재를 처음 알았다고 한다.
"30년 전을 돌이켜보면 길에 껌은 덕지덕지 붙었고, 새치기도 많았다. 국제대회를 계기로 우리 국민에게 질서의식이 생겼다. 이때 자원봉사자들이 앞장섰다. 흔히 '국격을 한 단계 올렸다'고 말하는데, 우리 자원봉사자가 음지에서 이를 해냈다는 자부심을 품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에서 그의 자원봉사 근무처는 인천국제공항이다.
25년 넘게 여행사를 운영하고 영어에 능한 그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오는 선수단을 맞이하고, 또 배웅하는 일을 맡았다.
"1999년 강릉동계아시안게임 때는 인천공항이 문을 열기 전이라 김포공항에 있었다. 그때는 모든 공문을 팩스로 주고받았다. 지금 같은 레이저 팩스가 아니라 도트 팩스다. 팩스 과정을 여러 번 거치다 보니 (김포공항에서) 받아 본 팩스는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외국에서 온 선수를 마중하는 게 중요한 업무인데, 글자가 잘 안 보여 잘못 찾아가는 일이 허다했다. 아침마다 자료를 받아서 쭉 정리하는 게 내 일이었다. 이번에도 (자원봉사자) 면접 볼 때 이런 식으로 재능기부 하겠다고 말했다. 덕분에 인천공항에서 근무하게 됐다. 선수단, IOC(국제올림픽위원회), NOC(국가올림픽위원회) 관계자들을 안내하는 일이다. 아무래도 평창 갈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이형용 씨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이후 30년 넘게 국제대회 현장을 지켜 기술 발전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30대 중반에 처음 자원봉사를 시작한 1986년 아시안게임 때는 농구장에 배치됐다. 당시 농구 보도본부장은 지금 농구협회장 하시는 방열 씨였다. 난 보도계장을 맡았다. 그 인연으로 1988년에는 보도본부장을 했다. 서울올림픽에서 스포츠 경기에도 전산 입력이 도입됐다. 1986년에는 농구 전반전 끝나고 10∼20분이 지나서야 스코어 기록지가 나왔다. 그러던 게 1988년에는 전산 덕분에 2∼3분이면 결과가 나왔다. 기자석마다 TV를 설치한 것도 1988년이 처음이었다. 지금같이 TV가 얇은 게 아니라 두꺼울 때라 책상 공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책상 아래로 'ㄷ'자 모양으로 공간을 만들어 거기에 TV를 넣은 뒤 유리판을 깔았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다."
서울올림픽 당시 자원봉사자 2만7천여 명 가운데 1천300명은 지금도 '서울올림픽 자원봉사자회'라는 모임을 통해 추억을 공유한다.
회장을 맡은 이형용 씨는 "우리 모두에게 서울올림픽은 너무 소중한 기억이자 자긍심이다. 얼마 전 돌아가신 한 회원은 영정 사진으로 서울올림픽 당시 단복 입은 걸 썼다. 나 역시 30년 전 그 옷을 그대로 갖고 있다. 올해 11월 서울 코엑스에서 평창 자원봉사자 발대식이 열렸을 때는 서울올림픽 단복 상의를 입고 갔다. 평창 성화 옆에서 사진 한 장 찍었다"고 했다.
그의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손바닥만 한 크기라도 관계없으니, 올림픽공원에 자원봉사자를 위한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다.
"지금이야 자원봉사가 흔해졌다. 이러한 자원봉사의 시작은 30년 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다. 후세에게 자원봉사 정신을 물려주도록 올림픽공원에 '자원봉사' 4글자가 들어간 표식을 만드는 게 목표다. 크기는 작아도 상관없다. 선수들이 메달을 받는다면, 우리는 '마음속의 메달'을 받는다."
4b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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