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말라 르포] 팔레스타인 화약고 서안엔 여학생·어린이도 투석전 가담

입력 2017-12-10 05:00
[라말라 르포] 팔레스타인 화약고 서안엔 여학생·어린이도 투석전 가담

트럼프 '예루살렘 선언' 후 서안 라말라에선 나흘째 격렬 시위

시위 현장엔 최루탄·타이어 타는 냄새 진동

(라말라<팔레스타인 자치령>=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 9일(현지시간) 오전 예루살렘에서 택시를 타고 40분간 이동해 팔레스타인 자치령 요르단강 서안 지역의 라말라에 도착했다.

현재 팔레스타인의 상징적 행정 수도 역할을 하는 라말라는 예루살렘에서 약 25km 떨어져 있다. 이 도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하고 나서 서안 지역에서 가장 격렬한 시위가 열린 곳 중 한 곳이다.

라말라 시내 중심 거리엔 주말을 맞아 음식점, 카페, 옷가게, 액세서리 가게 등이 즐비한 채 손님을 맞을 채비를 했다. 번화가 한가운데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도 설치됐다.

그러나 오후 1시께 라말라 시내에서 불과 3km 떨어진 동남쪽 엘벨루아 지역에선 금세 전쟁이라도 날 듯 살벌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주변 도로에는 전날에도 격렬한 시위가 열린 탓인지 타고 남은 타이어와 나무 등의 검은 재가 목격됐다.

복면을 한 팔레스타인 청년 30여명이 하나둘씩 속속 모여들더니 이스라엘 검문소에서 약 200m 떨어진 도로 위에서 작전을 펼치듯 바리케이드를 쳤다.

이들이 어디선가 가져온 타이어 3~4개에 불을 붙이자 하늘은 검은 연기로 순식간에 뒤덮였다.

청년들은 주변 길가의 바위와 돌을 가져와 도로 주변에 흩뿌렸다. 이들은 현장 어디에서든 재빨리 돌을 던질 환경을 조성하고 나서 본격적인 돌팔매질을 시작했다.

그러자 이스라엘 군인 10여명도 최루탄을 발사하며 시위대를 향해 접근했다. 갑작스럽게 '텅' 소리와 함께 사방에 떨어진 최루탄 여파에 기자의 눈도 따갑게 느껴졌고 눈물까지 나왔다. 타이어에서 내뿜는 연기와 최루탄 가스의 연기가 뒤섞여 메케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뒤이어 이스라엘 군용 차량 2대가 시위대 방향으로 진격을 개시하자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급히 뿔뿔이 흩어져 뒤로 물러났다.

시위 현장에 나타난 팔레스타인인 대부분은 청년들이었다. 얼굴과 머리를 스카프와 히잡으로 가린 여학생 2명과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린이도 2~3명 보였다.

한 여학생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어깨에 망토 식으로 걸치고 있었다.

서안 지역의 한 대학교 1학년이라고 밝힌 이 여학생(18)은 바리케이드 뒤편에서 상황을 조심스럽게 주시하며 진격과 후퇴를 반복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이 학생은 "트럼프의 예루살렘 발언에 화가나 이 시위에 참여했다"며 "직접 돌을 던지거나 돌을 나르는 일을 돕는다. 가끔 최루탄 가스 흡입에 고통받는 시위대의 치료를 돕기도 한다"고 했다.

이 여학생은 "아버지는 지금 이스라엘 교도소에 갇혀 있다"고 말했고 그 옆의 다른 여학생은 "내 자매 한 명도 감옥에 있다"고 했다.

앳된 모습을 한 채 뒤쪽에서 돌을 던지던 한 어린이는 "부모님은 내가 이 시위에 참여한 줄을 모르고 있다"고 말한 뒤 시위 현장으로 다시 달려갔다.

이 지역에 사는 주민 압둘 라히마(45)는 "트럼프의 선언 후 매일 이곳에서 시위가 열리고 있다"며 "여기서 여학생과 어린이가 투석전을 하는 건 이젠 흔한 일이 됐다"고 귀띔했다.

복면을 한 채 선두에 서서 투석전을 벌이기 시작한 한 청년은 "트럼프의 발표는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며 "우리는 이스라엘의 점령이 끝날 때까지 이런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청년은 "트럼프의 예루살렘 수도 발언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1주가 됐든 2주가 됐든 예루살렘에 관한 우리의 권리를 되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돌을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 옆에 있던 다른 청년은 "트럼프에게는 예루살렘이 누구의 수도라고 결정할 권리가 없다"며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의 땅이자 수도이다. 이 도시를 끝까지 지킬 것"이라고 외쳤다.

이들은 모두 복면을 해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웠으며 이름 밝히기도 매우 꺼렸다.

이곳 라말라 동남쪽 방향에 있는 엘벨루아 지역은 유대인 정착촌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반이스라엘 시위가 자주 열리는 곳이다. 이 지역의 언덕에는 이스라엘군 초소가 설치돼 있고 그 초소에서 군인들이 현장을 감시하는 장면도 보였다.

라말라에서 정치분석가로 활동하는 칼리드 나시프는 "트럼프가 발언한 날부터 나흘간 매일 라말라에서 과격한 시위가 열리고 있다"며 "지금 다소 격해진 시위가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수도 있겠지만,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이 중단되지 않는 한 이러한 시위는 끊임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사이 이스라엘은 라말라와 예루살렘을 연결하는 칼란디아 검문소에서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대기 차량 행렬이 약 200m에 달했고 대기 시간도 1시간 정도 걸렸다.

라말라와 예루살렘을 잇는 이 검문소 주변에서는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 10여명이 지나가는 차량을 샅샅이 뒤지고 신분증을 검사했다. 기자가 탄 버스에 올라타서도 탑승자들의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했다.

일부 팔레스타인 주민은 40m 거리에 있는 또 다른 검문소로 이동해 별도의 신분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 당국의 도시 간 이동을 사전에 허락받은 상태다. 이스라엘 당국의 허가나 검문 없이는 도시 간 경계선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안과 연결된 검문소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칼란디아 검문소는 이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과 분쟁을 상징하는 장소로 굳어버린 듯했다.







gogo21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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