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가짜뉴스' 구호, 권위주의 국가 체제보호 방패막이"
폴리티코 "전세계 15개국 이상에서 반체제 낙인찍기용 '가짜뉴스' 표현 애용"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우호적 언론을 향해 '전가의 보도'처럼 규정해온 '가짜뉴스' 구호가 전세계 권위주의 정상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권에 반대하거나 인권 유린, 언론 자유 억압 실태 등에 맞서는 반체제 움직임을 무력화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가짜뉴스' 슬로건을 체제보호의 방패막이로 삼는 흐름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8일(현지시간) 적어도 전 세계 15개 국가에서 비판자들을 찍어 누르기 위해 '가짜뉴스' 주문을 외우며 낙인찍기 행태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국제 언론단체인 언론인보호위원회(CPJ)의 조엘 사이먼 사무국장은 폴리티코에 "트럼프 대통령이 비판적 언론에 분개한 권위주의 국가 지도자들에게 방어할 수단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라며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애용하는 나라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고 말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지난 10월 바사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1만3천 명가량이 군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국제사면위원회(AI) 보고서에 대해 "요즘에는 아무것이나 다 날조한다. 우리는 '가짜뉴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반박했다.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가짜뉴스'들 때문에 악마가 돼버렸다"고 자주 말해왔다. 그는 지난달 아시아 순방길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후 기자들을 향해 '스파이들'이라고 대놓고 비난하기도 했다. 당시 옆자리에 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웃음'을 보여 도마 위에 올랐다.
미얀마의 한 정부 관리는 전 세계적 지탄을 받아온 소수민족 인종청소 사건인 '로힝야 사태'에 대해 "로힝야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 스페인에서는 카탈루냐 독립투표 과정에서 빚어진 경찰 폭력 사태에 대해 사진과 비디오 증거물에도 불구, 정부 고위 관계자가 '가짜뉴스'라고 부인한 일도 있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중국에서는 지난 5월 인민일보가 인권 운동가에 대한 고문 주장과 관련, "트럼프가 옳다. 가짜뉴스는 '적'이다 "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기도 했다.
폴리티코는 "우간다, 소말리아, 앙골라, 터키 등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이어지고 있다"며 '연설의 자유'를 제한해온 싱가포르의 경우 내년에 '가짜뉴스' 방지법 제정까지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폴리티코에 보낸 이메일에서 "연설이나 언론의 자유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언론보도가 정확해야 한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뜻"이라고 밝힌 뒤 '트럼프 대통령의 '가짜뉴스' 표현이 독재국가들의 체제보호 수단이 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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