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번역전쟁·만족을 알다

입력 2017-12-07 14:49
[신간] 번역전쟁·만족을 알다

IMF키즈의 생애·일본적 마음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 번역전쟁 = 번역가 이희재씨가 말을 상대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전쟁'의 모습들을 드러낸다.

책에서 말하는 '번역'은 일반적인 의미의 글 번역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해 말로 담아내는 것까지 확대한 개념이다. 저자는 우리가 무심코 쓰고 있는 말들이 의도적으로 왜곡됐을 수 있다는 시각에서 말들을 바라본다.

예를 들어 '포퓰리즘'으로 번역되는 영어단어 'populism'은 대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19세기 말 미국에서는 철도거품이 꺼지며 금융위기가 생겼고 그 불똥이 농민에게까지 튀었다. 농민들은 이에 토지 소유 제한과 철도 국유화, 금융 민주화 등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뜻을 대변해 줄 'People's Party'라는 정당을 만들었다. 원래 'populism'은 이 정당을 만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자기들끼리 이르던 말로 자기비하와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이 단어의 뜻을 제대로 담는 번역으로 '서민주의'를 제안한다.

이밖에 'privatization'은 소수 기득권자가 다수 서민을 고달프게 만드는 '사유화'이지만 '민영화'라고 고집하는 경우, 'war on terror'는 '테러 절멸전'이 아니라 '테러 양산전'인 셈이 많았다고 설명한다.

영한사전에서 '과두지배세력'으로 풀이되는 '올리가르흐'(oligarch)를 저자는 사회의 권력이 금력에서 나온다는 의미로 '금벌'(金閥)이라고 번역한다. 책은 'oligarch'는 영미 언론에서 러시아 현실을 그리는 데 쓴다는 점을 지적하며 '금벌'이 러시아에만 있는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궁리. 520쪽. 2만5천원.

▲ 만족을 알다 = 에즈비 브라운 지음. 일본건축과 디자인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미국인 연구자인 저자가 현대인의 눈으로 일본 에도시대(1603∼1868)의 생활사를 재현한다.

저자는 에도시대를 '지속가능한 사회'로 규정한다. 농촌에서는 자연에 순응하며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삶을 추구했다. 재활용과 재사용이 몸에 뱄고 경작지는 지형을 활용했으며 가옥은 검소하면서도 기능적이었다.

도시에서도 좁은 공간을 활용한 주택구조와 자재의 재활용, 놀랄 만한 수준이었던 상하수도 시설, 건축자재와 시간의 낭비를 줄일 수 있는 표준화된 건축설계도가 사용됐다. 무사들은 검소하면서도 품격을 갖추려 노력했다.

당시 에도시대 삶을 묘사한 수백 컷의 삽화가 돋보이다.

달팽이출판. 정보희 옮김. 336쪽. 1만5천원.



▲ IMF 키즈의 생애 = 안은별 지음. 인터넷 미디어 프레시안의 기자 출신인 저자가 외환위기 속에서 10대를 보낸 'IMF 키즈' 30대 성인 7명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외환위기를 통과해온 경험이 이들의 삶에 어떻게 새겨져 있는지 개별적인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교집합을 조심스레 제시한다.

코난북스. 373쪽. 1만6천원.

▲ 일본적 마음 = 김응교 지음.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가 1996년에서 2009년까지 일본에 살면서 관찰하고 연구한 일본문화와 일본인의 정체성을 에세이로 풀어냈다.

체념, 집단주의, 부끄러움과 수치, 죽음의 문화를 통해 일본 사회를 읽어낸다. 일본인들이 벚꽃을 보며 죽음을 떠올리는지, 일본에는 유독 대를 잇는 장인들이 많은지, 일본 축구대표팀 유니폼에 까마귀가 그려진 이유 등을 담았다.

책읽는고양이. 240쪽. 1만4천원.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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