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평화의 소녀상…인권 향상 계기 되길 바란다"

입력 2017-12-06 11:02
"춘천 평화의 소녀상…인권 향상 계기 되길 바란다"

춘천출신 김운성 작가 "어릴 적 놀던 곳에 소녀상 서 뿌듯"

(춘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강원도 강릉, 원주에 이어 오는 9일 춘천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다.

2011년 12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1천 회를 맞아 서울에 첫 소녀상을 세운 지 6년 만이다.

그간 전국적으로 68개, 해외에도 18개가 만들어졌다.

보수의 아성처럼 여겨졌던 춘천에 소녀상이 들어서는 것도 특별한 일이지만 소녀상을 제작해 온 김운성 작가에게는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춘천은 김 작가가 유년부터 청년 시절까지 추억을 쌓아온 고향인 까닭이다.

그는 "춘천이 고향이기 때문에 (평화의 소녀상을) 좀 더 일찍 세웠으면 했다"며"이제라도 건립하니 매우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주위 많은 사람, 특히 춘천 평화나비네트워크 친구들이 같은 고민을 해 많은 대화를 나누고 (소녀상을 세우는데) 힘이 됐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는 활동가 중에 춘천 출신이 많다고 밝혔다.

그는 "뉴욕 유엔여성지위위원회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 모금 운동, 미국 LA에 최초로 소녀상 건립,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활동에 춘천 출신 인물들이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녀상 보금자리가 춘천 의암공원으로 정해지기까지는 많은 곡절이 있었다.

춘천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추진위)는 춘천시청사 앞 시민공원에 소녀상을 세우고자 했으나, 춘천시가 이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 한동안 건립 장소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달 27일 추진위가 "갈등을 지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지천 의암공원 내 유인석 선생 동상 옆에 세우기로 했다.



김 작가는 "논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며 "어릴 적 집이 근화동이라 의암공원에서 많이 놀았었는데 소녀상 건립을 계기로 평화공원으로 탈바꿈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가 소녀상 작가가 된 계기는 2011년 1월로 거슬러 간다.

일본 대사관 앞을 지나다 우연히 수요집회 현장을 보게 된 것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라는 사실을 알고서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그는 정대협을 찾아가 자신이 미술 전공자임을 밝히고 도울 일이 없는지 물었다.

정대협 관계자가 수요집회 1천 회를 기념해 비석을 세울 계획에 있으니 디자인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김 작가는 소녀상을 제작하면서 가장 큰 에피소드로 '일본'을 꼽았다.

그는 "처음 계획은 지금 같은 동상이 아니라 비석이었다"며 "비석을 세우지 말라는 일본의 압력을 접하고 '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비석으로는 뜻을 알리기 부족할 것 같으니 전공을 살려 조각상으로 제작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정대협은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이어 조각상에 대해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지금과 같은 소녀상의 모습으로 결정했다.

그는 "일본의 압력 때문에 작업에 임하는 자세를 더 가다듬게 됐다"며 "저들이 가만히 있었으면 비석에서 끝났을 테지만 계속 압박해오니 동상으로 변했고, 그것이 한 점이 아니라 수십 점으로 늘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소녀상에는 많은 상징이 담겨있다.

거칠게 뜯어진 단발, 땅에 딛지 못한 뒤꿈치, 굳게 쥔 주먹, 드리운 그림자, 빈 의자 등 숨은 상징이 12가지나 된다고 작가는 밝혔다.



이는 끊어진 인연, 떠밀려간 삶, 쌓인 상처, 굳은 의지 등을 뜻한다.

이 같은 의미를 오롯이 담아내 지금의 소녀상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아내인 김서경 조각가의 몫이 컸다.

김 작가는 "일본을 꾸짖는 모습, 해하는 모습 등 거친 형상으로 조각을 구상하던 중 아내가 소녀상을 제안했다"며 "여성의 감수성으로 세밀한 감정을 담아낼 때는 아내의 역할이 컸고, 크고 거친 표현은 내가 담당했다"고 말했다.

소녀상이 완성되고 제자리에 섰을 때, 작가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이것을 어떻게 바라볼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할머니들이 소녀상을 본인들처럼 여기며 끌어안고 다독이는 모습을 봤을 때 '비로소 우리 할 일을 했구나'하는 안도감을 찾았다.

김 작가는 소녀상을 70여점 가량 제작했다. 모든 작품이 그에게는 어느 것 하나 따로 꼽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그는 이제 눈을 들어 더 넓은 곳을 바라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넘어서 강제노역·징병·수탈·원폭 피해 등 사회 전면에 채 드러나지 못한 문제들, 더 나아가 월남전 당시 현지 민간인 피해자까지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을 구상·제작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성 인권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작가는 "춘천에 소녀상이 세워지는 것에는 여성 인권에 대한 부분들이 가장 크다"며 "여성 인권이 존중받고 여성이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면 학생·노동 등 여러 인권 문제도 함께 성장하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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