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복속기 경계로 국가 정체성 혁명적 변화 겪어"
최종석 동덕여대 교수 '역사비평' 겨울호서 주장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고려의 장군이었던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일으켜 1392년 건국한 조선은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기고, 국가의 근본이념을 불교에서 유교로 바꿨다.
왕조의 교체는 이처럼 정치·경제·사회 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조선의 자기 정체성은 고려 후기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최종석 동덕여대 국사학과 교수는 최근 발간된 계간지 '역사비평'에 실은 논고에서 13∼15세기 국가 정체성의 변곡점은 왕조 교체보다는 원나라의 고려 복속이었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원 복속 이전까지는 중국 황제의 신하라는 위상이 국내에 관철되지 않았다"면서 "고려는 황제국 체제와 제후국 체제 가운데 어느 하나를 지향하지 않아 두 체제가 혼합된 양상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나라의 복속으로 고려는 제후국 혹은 속국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됐다. 이러한 태도는 원나라의 세력이 현저하게 약화하고 명나라가 등장한 상황에서도 유지됐다. 다만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제후국 체제를 확립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최 교수는 "태종 대를 기점으로 조선은 자신을 공간과 종족 측면에서 중국과 명확히 구분되는 것으로 전제하면서도 천자를 정점으로 한 천하를 자발적으로 수용했다"면서 "공간적으로 (세계의) 주변에 자리하면서도 문명 중화를 보편가치로 간주해 스스로 이를 구현하고자 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조선의 자기 정체성은 중국 왕조로부터의 독자성을 의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연하게 향유한 고려 전기와 비교하면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은 셈"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16세기 이후에도 문명 중화의 철저한 추구와 제후 명분의 자발적 견지라는 정체성이 지속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역사비평 겨울호에는 이외에도 고려와 조선의 관계를 '연속성'이라는 관점으로 조명한 글이 여러 편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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