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꽁꽁 얼어붙은 인력시장…땀이 그리운 일용직 노동자 '한숨'

입력 2017-12-05 08:12
수정 2017-12-05 10:04
[르포] 꽁꽁 얼어붙은 인력시장…땀이 그리운 일용직 노동자 '한숨'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할 일이 없으면 막노동이라도 뛰라는 말이 있잖아요. 막노동이라도 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없어요. 지난주에는 고작 하루 일했습니다."

지난 4일 오전 부산 동구 초량동에 있는 부산시 일일취업안내소.



일일취업안내소는 주로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려는 사람을 구인업체와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오전 5시 30분부터 큰 배낭을 멘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구직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큰 배낭에는 여분의 옷과 간단한 공구, 라면에 말아 먹을 맨밥이 들어 있었다.

오전 6시가 가까워지자 취업안내소는 구직자들로 꽉 찼다.

곧이어 번호표 추첨이 시작됐다. 일감을 받을 수 있는 순서를 정하기 위해서다.



번호표를 뽑은 구직자들은 취업안내소에서 제공하는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며 자신의 순서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전화벨 소리가 정적을 깨우자 구직자들의 시선은 한곳으로 모였다.

혹시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업체의 전화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다.

이들 모두가 일터로 나갈 수 없다. 이곳을 찾는 구직자 수보다 일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날 번호표를 뽑은 사람은 총 19명. 이 중 9명만 일용직 일자리를 배정받았다.

요즘 취업안내소에는 추워진 날씨만큼 찬바람만 불고 있다. 건설경기 악화의 여파로 일감이 턱없이 줄었기 때문이다.



채광수 부산시 일일취업안내소 소장은 "평균 30∼40명의 구직자가 새벽같이 이곳을 찾지만 10∼15명 정도만 일자리를 소개받는다"며 "오늘은 그나마 많은 구직자가 일터로 나가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7년째 부산시 일자리취업안내소에 출근 도장을 찍는 김모(56) 씨는 "처음 여기에 왔을 때 한 달에 26일 이상을 일한 적도 있었다"며 "요즘은 일주일에 한두 번 밖에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자리를 받아도 마음이 무겁다.

박모(48) 씨는 "운 좋게 오늘은 일터로 나가지만 일자리를 못 구해 당장 끼니 걱정을 할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생각하면 안타깝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오전 8시께 일일취업안내소에는 13명의 구직자가 남았다.

이들은 오전 7시 30분이 지나면 일거리를 구할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뒤늦게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안내소를 찾은 20대 청년도 보였다.

이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쓴 입을 담배로 달래며 자리를 지키다 이내 각자의 집이나 공원 등지로 흩어졌다.

부산시 일일취업안내소는 사설 인력사무소와 다르게 구직자가 일자리 소개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 부산시의 지원으로 운영된다.

이곳은 사설 인력사무소보다 구직자들에게 기회가 균등하게 제공되기 때문에 '힘없고' 현장에서 낙오된 50대 구직자들이 주로 찾는다고 취업안내소 관계자는 귀띔했다.

임명식 부산시 일일취업안내소 사무장은 "오늘은 몇 명이나 일터로 보낼 수 있을까 걱정하며 새벽 출근길에 오른다"며 "마지막까지 희망을 끈을 놓지 않은 구직자들이 계속되는 일자리 불황으로 혹시나 희망을 잃고 노숙자로 전락하지는 않을까 우려가 없지 않다"고 말했다.



handbrother@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