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 허용하는 사우디…실세왕자, 온건 이슬람 시동거나

입력 2017-12-03 08:00
'즐거움' 허용하는 사우디…실세왕자, 온건 이슬람 시동거나

피아니스트 야니 공연에 남녀 섞여 열띤 환호

최고 종교지도자 "음악은 악마에 문 여는 일" 경고 무색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슬람권의 주말인 1일(현지시간) 금요일 저녁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의 경제자유지역 '킹압둘라 이코노믹 시티'의 특설 공연장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술렁거렸다.

이윽고 공연의 주인공인 세계적인 크로스오버 음악가 야니가 등장하자 환호가 터졌다. 스마트폰을 높이 들고 그의 모습을 촬영하기에 바빴다.

강렬한 인트로가 끝나도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야니는 그의 팬들에게 "우리 집에 온 것 같군요. 모든 게 완벽합니다"라고 화답하고 '펠라챠'를 시작으로 12곡을 이어갔다.

야니의 외국 투어 콘서트는 흔한 일이지만, 그 장소가 사우디라면 그 의미는 작지 않다.

보수적 이슬람 원리주의 와하비즘이 건국의 사상적 근간인 터라 음악과 같은 '즐거움'은 되도록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불과 올해 1월에만 해도 사우디의 최고 종교지도자(카비르 무프티) 압둘아지즈 알셰이크는 "영화와 음악 콘서트는 악마에게 문을 여는 일"이라면서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음악 콘서트장이 사우디에 생기면 처음엔 여성 전용 구역을 마련하다가 점점 남녀 관객을 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가 나올 것이라"며 "이는 우리의 가치를 파괴하고 도덕을 망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야니의 공연은 사우디엔터테인먼트청(GEA)이 주최했다. GEA는 금기를 깨는 개혁 조치로 세계적 유명인사가 된 사우디의 실세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설립한 정부 기관이다.

GEA의 임무는 사우디 국민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다.

석유 이후 시대를 대비하려면 사우디가 종교적으로 금기시했던 대중문화, 관광과 같은 '소프트 산업'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게 모하마드 왕세자의 '비전'이다.

지난해 5월 새로 출범한 GEA는 소수 초청자만 관람하는 음악 콘서트를 70여차례 열었다가 올해 1월 비로소 과감한 모습을 보였다.

수도 리야드에서 25년만에, 제다에서 7년만에 대규모 공개 콘서트를 연 것이다.

이 콘서트에는 아랍권에서 유명한 사우디 출신 가수 모하마드 압두가 무대에 섰다. 관중은 모두 남자였다.

이번 야니의 콘서트에서는 한발 짝 더 나아갔다.

여성 관중 입장을 허용한 것은 물론, 가족석의 경우 남녀 혼석을 마련한 것이다. 또 여성 첼리스트 사라 오브라이언과 여가수 로렌 젤렌코비치가 협연했다.

외국인이지만 사우디에서 여성 예술가가 무대에 서는 일도 드물거니와 남성 관중 앞에서 콘서트를 연 것은 파격적이다.



공연 뒤 사우디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야니의 공연보다는 남녀 관객이 섞인 채 환호를 지르는 사진이 더 화제가 됐을 정도다.

부부가 함께 공연을 본 한 관객은 "우리나라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변하는 걸 보니 매우 기쁘다"면서 "정말 사우디가 요즘 진전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직된 사우디의 엄숙주의를 고려하면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대중문화 가운데 종교적 부담이 가장 큰 음악을 개혁 조치의 상징으로 선택한 것은 정면승부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그가 천명한 '온건한 이슬람으로의 회귀'라고 일단 해석 할 수 있다.

그는 10월 국제회의에서 "우리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다. 우리의 종교가 관용과 우리의 전통인 친절로 나타나는 삶"이라며 "모든 종교와 전통, 세계 모든 사람에게 개방적인 온건한 이슬람 국가였던 우리의 옛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종파적, 종족간 갈등이 첨예하고 외세의 영향이 큰 중동의 지역적 환경 탓에 필요 이상으로 강경해진 사우디를 '정상 국가'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같은 수니파지만 이미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은 이미 서구 수준의 문화적 다양성을 허용해 기존 중동 이슬람 국가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색하는 데 성공했다.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반부패 드라이브를 내세워 왕실 내 경쟁자와 경제적 기득권층을 숙청해 차기 왕권 강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지됐던 즐거움을 허용해 국민에게 '숨통'을 틔워준다면 기득권을 쥔 보수적 종교계와 왕실의 반격에 맞서는 지지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점도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양위가 임박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이란과 긴장을 높이는 동시에 대내적으로는 여성 운전, 음악 콘서트와 같은 금지된 관습을 무너뜨려 자신의 안정된 차기 왕권에 위험요소를 진압하려는 '양수겸장'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두고 있는 셈이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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