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 교차한 올해 한국영화계…실화의 힘·범죄영화 쏠림

입력 2017-12-02 09:00
수정 2017-12-02 18:07
'빛과 어둠' 교차한 올해 한국영화계…실화의 힘·범죄영화 쏠림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올해 한국영화계는 빛과 어둠이 교차했다.

관객 1천220만명을 동원한 메가 히트작('택시운전사')을 배출했고, 제70회 칸국제영화제를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으며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어렵게 데뷔 기회를 잡은 신인감독들의 작품이 쟁쟁한 경쟁작을 제치는 파란을 일으켰는가 하면, 여성감독과 중견 배우들도 의미 있는 활약을 보여줬다.

반면 어둠도 짙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범죄영화로의 쏠림현상은 올해도 두드러졌다. 이 때문에 "흥행과 별개로 예술적 성취를 보여준 작품이 드물었다", "소재의 빈곤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영화계 내부 평가도 나왔다.

이를 반영하듯 외형적 성장도 정체를 보였다. 올해 들어 11월 말까지 한국영화 관객 수는 9천524만명.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20만명 적은 수치다.

이달 중순부터 '강철비' '신과 함께' '1987' 등 대작 3편이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작년의 한국영화 관객 수(1억1천655만명)를 뛰어넘으려면 이달 말까지 2천100만명 이상이 관람해야 한다. '군함도' '브이아이피' '청년경찰' 등이 겪은 역사 왜곡·여성혐오·중국 동포(조선족) 묘사 논란과 평점 테러 등은 달라진 관객의 성향을 반영하며 또 다른 숙제를 영화계에 던지기도 했다.



◇ 역사 소재 사회적 공감대 넓힌 '택시운전사'·'아이 캔 스피크'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가 1천만 명 이상을 동원한 것은 그간 '천만 영화'들과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이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 점에서 한 편의 영화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현재를 휴먼코미디라는 장르에 담아낸 '아이 캔 스피크'(326만명)의 흥행도 같은 연장 선상에 있다.

2000년 발생한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재구성한 '재심', 일본의 조선인 학살에 항거한 박열과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박열'(236만명) 등에 대한 높은 호응 역시 '실화의 힘'을 보여준다.



다만 패배의 역사를 담백하게 그린 '남한산성', 역사적 비극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군함도'는 흥행 면에서 아쉬운 결과를 냈다. 전찬일 평론가는 "영화 자체의 덕목보다는 관객들의 영화 보기 성향에 의해 희비가 엇갈렸다"고 평했다.

올해는 다큐멘터리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노무현입니다'는 185만명을 불러모았고, 공영방송의 무너진 공공성을 다룬 '공범자들'도 26만명이 관람했다.

가수 김광석의 자살 의혹을 제기한 다큐멘터리 '김광석'은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영화 개봉 이후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 씨를 대상으로 고소·고발이 이어졌으나, 경찰이 무혐의 결론을 내리면서 명확한 근거 없는 의혹 제기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 소재의 빈곤 드러낸 범죄영화 쏠림현상



올해 들어 11월 말까지 흥행 순위 20위권 안에 든 한국영화를 분석한 결과, '범죄도시' '청년경찰' '더 킹' '프리즌' '살인자의 기억법' '보안관' '조작된 도시' '마스터' '꾼' '브이아이피' 등 절반(10편)이 범죄영화였다. 스릴러나 코미디, 드라마, 액션 등 장르적 외피는 다양했지만, 모두 범죄를 소재로 했다.

한 중견 제작사 대표는 "긴장감을 유지하고,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범죄영화만큼 적합한 장르는 없다"면서 "외국의 유명 작품들도 범죄영화가 많다"고 항변했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의 장르로 쏠리는 것은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외연 확대라는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인상을 주며 관객들의 피로도를 높여 한국영화를 외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김이석 평론가는 "올해는 흥행과는 별개로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주제의식이 드러나지 않고 시각적, 표피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영화가 대부분이었다"고평가했다.





◇ 신인감독들의 '파란'…여성 감독도 활약

신인감독들은 올해 날개를 달았다. '청년경찰'의 김주환 감독과 '범죄도시'로 17년 만에 데뷔 기회를 잡은 강윤성 감독이 대표적이다.

여름과 추석 시즌에 각각 개봉한 '청년경찰'(565만명)과 '범죄도시'(687만명)는 같은 시기 개봉작 중 최약체로 꼽혔으나,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많은 제작비와 멀티캐스팅이 아니더라도 잘 짜인 이야기와 탄탄한 연출이 뒷받침된다면 대중적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이들 영화의 성공은 작품성과 별개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화계 관계자는 "촛불집회·대통령 탄핵·대선 등 정치적 격변을 겪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선호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외에 '보안관'의 김형주, '프리즌'의 나현, '대장 김창수'의 이원태, '미옥'의 이안규, '꾼'의 장창원 감독 등도 올해 장편 데뷔작을 선보인 감독들이다.

'해빙'의 이수연 감독을 비롯해 '싱글라이더'의 이주영, '여배우는 오늘도'의 문소리, '유리정원'의 신수연, '부라더'의 장유정, '메소드'의 방은진 등 여성감독들도 한국영화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중견 배우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올해 일흔여섯 살의 나문희는 '아이 캔 스피크'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반드시 잡는다'의 백윤식, '채비'의 고두심, '재심'의 김해숙, '옥자'의 변희봉 등 노장들도 남다른 존재감을 보여줬다.



◇국제영화제 빛낸 한국영화…'옥자'로 넷플릭스 논란

홍상수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배우 김민희는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지난 2월 제67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의 여배우가 3대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10년 만이다.

5월에 열린 칸영화제서도 한국영화는 화제의 중심에 섰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홍상수 감독의 '그 후' '클레어의 카메라',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변성현 감독), '악녀'(정병길) 등 총 5편의 장편영화가 공식부문에 초청됐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평단의 고른 호평을 받았다. 경쟁부문에 초청된 넷플릭스 영화 '옥자'는 온라인 배급방식을 둘러싼 논란을 촉발하는 촉매제가 됐다. 결국, 칸영화제 집행위원회는 내년부터 극장 개봉영화만 경쟁부문에 초청하겠다고 방침까지 바꿨다.

넷플릭스 영화 논란은 국내에서도 이어졌다. CGV, 롯데,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가 '옥자'의 극장 개봉과 넷플릭스 동시 서비스에 반발하며 '옥자' 상영을 보이콧했다. 제2의 '옥자'는 언제든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극장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상생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fusion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