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의도 없어도 강제외설죄 성립"…日 대법 판례 변경

입력 2017-11-30 10:39
"성적 의도 없어도 강제외설죄 성립"…日 대법 판례 변경

엄벌 원하는 사회인식 반영, '피해자의 성적자유 침해'땐 성립

국민의식 변화 따라 처벌 필요한 행위 범위 변화 가능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일본 최고재판소가 강제외설죄에 대한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일본 최고재판소는 29일 "성욕을 충족시킬 의도"가 없더라도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한 경우에는 강제외설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이는 최고재판소가 1970년 강제외설죄가 성립하려면 "성적 의도"가 있어야 한다고 판시한 앞서의 판결을 47년만에 번복한 것이다. 최고재판소가 형사재판의 판례를 변경하기는 2003년 횡령죄 관련 판례 번복 이후 14년만이다.

최고재판소는 이날 13살이 안된 소녀에게 외설스런 행위를 하고 사진을 찍어 강제외설 혐의 등으로 기소된 남성(40)이 하급심에서 실형을 선고한 것은 판례위반이라며 제기한 재판에서 재판관 15명의 전원일치 판결로 상고를 기각했다. 피고는 1, 2심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자 최고재판소 판례위반이라며 상고했었다.



최고재판소는 지난 1970년 보복 목적으로 외설스런 행위를 한 피고에 대해 강제외설죄가 성립하려면 "성적 의도가 있어야 한다"며 죄를 인정하지 않았었다. 이 판례에 따라 그동안 강제외설죄로 처벌하려면 외설행위에 성적 의도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했으나 앞으로는 성욕을 만족시킬 의도가 없었더라도 성적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강제외설죄로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이날 판결은 작년 7월부터 개정 형법이 시행되는 등 성범죄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회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성범죄는 국민의식의 변화에 따라 처벌이 필요한 행위의 범위가 변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2004년 강제외설죄와 강간죄의 법정형을 높인데 이어 올해도 강제성교 등에 관한 죄를 신설하는 등 형법 개정을 추진해 오고 있다.

판결문은 이런 흐름에 대해 "성적피해에 관한 범죄와 피해실태에 대한 사회의 인식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지적, 반세기 전의 판례를 계속 유지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강제외설죄 성립 여부는 성적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한 가해자 측의 사정이 아니라 "피해자가 받은 성적피해 유무와 내용, 정도를 고려해야 한다"고 판례변경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 측은 재판에서 "성범죄에 엄정히 대처할 필요성이 높아진 현재 강제외설죄 성립에 성적 의도가 필요하다는 기존 판례는 타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금전을 빌리는 조건으로 지인으로부터 외설행위를 하고 사진을 찍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며 성적 의도를 부인했다.

1심 재판부인 고베(神戶)지방법원은 작년 3월 "피해자의 성적 자유가 침해되고 피고가 그 사실을 인식했다면 강제외설죄가 성립한다"며 판례 적용을 거부하고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2심인 오사카(大阪)고등법원도 "현시점에서 판례의 판단기준을 유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1심 판결을 지지했다.

피고 측 변호인이기도 한 고난(甲南)대 법학대학원의 소노다 히사시(園田?) 교수는 이날 판례변경과 관련, 괴롭힐 목적으로 나체사진을 찍는 경우 등을 예로 들며 "그동안 성범죄로 취급하지 않았던 사건도 강제외설죄로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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