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핵무력 완성' 선언, 북핵 위협 차원이 달라졌다
(서울=연합뉴스) 북한이 29일 초대형 핵탄두를 장착하고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 발사에 성공했다며 "국가핵무력 완성"을 주장했다. 북한은 이날 새벽 평양 교외에서 동해 상으로 ICBM급으로 추정되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정오께 조선중앙방송의 중대보도 형식으로 발표한 정부성명을 통해 이런 주장을 폈다. 성명은 "김정은 동지는 새 형의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5형의 성공적 발사를 지켜보시면서 오늘 비로소 국가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의 위업이 실현되었다고 긍지 높이 선포했다"고 했다. 북한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선전용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을 듯하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이 시험발사한 미사일을 화성-14형의 개량형일으로 추정하면서 "세 번에 걸쳐 발사된 ICBM급 중에서 가장 진전된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핵무력 완성까지는 아니지만, 기술 진전이 분명하고, 최종 단계에 근접해 있다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북한은 성명에서 최대 고각으로 발사된 화성-15형 미사일이 정점 고도 4천475㎞, 사거리 950㎞를 "예정된 비행궤도를 따라 53분간 비행하여 조선 동해 공해 상의 설정된 목표 수역에 정확히 탄착 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초대형 중량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로켓"이라고 했다. 탄도 미사일의 최대 비행 거리를 최고 고도의 2∼3배로 보는 것을 고려할 때 화성-15형을 정상각도로 발사했다면 최소 9천㎞에서 최대 1만3천㎞를 날아갔을 것으로 계산할 수 있다. 북한 동해안에서 미국 서부연안까지 8천여㎞라는 점에서 적어도 거리 면에선 북한의 주장이 허무맹랑한 게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은 이제 대기권 재진입 기술만 검증되면 핵무력 완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된다. 재진입 기술의 검증은 정상궤도로 발사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올해 안에 태평양 상 실거리 시험발사 도발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눈앞에 두고 물러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아 보인다. 북한의 추가 미사일 도발을 기정사실로 보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른 방향인 것 같다.
북한이 지난 9월 15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발사 이후 70여 일간 도발 공백이 이어지면서 북한과 대화 국면을 모색하려는 관련국들의 노력과 기대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날 미사일 도발로 모두 물거품이 됐다. 따라서 앞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대북 유류공급 제한 강화 등 고강도 추가제재 결의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가 처리하겠다"고 밝힌 것도 중국과 러시아가 제동을 걸면 세컨더리 보이콧 강화 등 독자제재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중국은 이날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내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엄중한 우려와 반대를 표명한다"고 했다. 하지만 틀에 박힌 논평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중국은 핵을 가진 북한이 동북아 안정에 결코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때문에 도입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트집 잡을 게 아니라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실질적인 압력을 넣는 데 동참하는 것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내년 2∼3월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을 통해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의 계기를 만들어보려던 우리 정부의 구상도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대기권 재진입 기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두르듯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것을 놓고 국면전환을 노린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단 핵무력 완성을 선언해 놓고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거나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 등 유화적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얘기인데 현실성이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면서 북한이 ICBM을 완성한다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수 있다며 "북한이 상황을 오판해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거나 미국이 선제타격을 염두에 두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안보의 초석인 한미동맹을 굳건히 유지해 북한의 오판을 막고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은 국제사회와 협력해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의 도발에 단호히 맞서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다. 북한의 이날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은 북핵 국면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럴수록 당국은 한미동맹 등 일관된 원칙을 유지하면서 더욱 엄중한 인식 아래 한반도 정세를 관리해나가야 할 것이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