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 출범…'박정희 동상' 심의 통과할까
교수·평론가 등 전문가 12명으로 구성…위원장은 안규철 한예종 교수
박정희기념재단 "동상 건립 무산될 경우 행정소송 검토"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서울시가 소유한 땅에 세워지는 동상·조형물 등 미술작품을 심의·관리하는 '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가 29일 정식 출범한다.
서울역 광장에 설치했다가 9일 만에 철거된 '슈즈트리(헌신 3만 켤레로 만든 조형물)' 논란을 겪은 서울시가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할 때 전문가와 시민 의견을 더 폭넓게 반영하고자 만든 위원회다.
이런 공공미술위원회가 출범하자마자 '박정희 동상 건립심의'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게 됐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뜨거운 사안에 대한 결정을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 맡긴 셈이다.
◇ 시유지 미술작품 설치, 위원회 심사 거쳐야
서울시는 이날 오후 3시 시청 신청사에서 공공미술위원회 위원 위촉식을 연다.
시는 그간 '공공미술자문회의'라는 비상설 기구를 두고 있었으나 이달 19일부터 시행된 '서울시 공공미술의 설치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라 자문회의를 상설기구인 위원회로 격상시켰다.
앞으로 시유지에 동상 등 미술작품을 설치하려면 반드시 공공미술자문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수정이 필요하다는 심의 결과가 나온다면, 이에 맞게 고쳐야 작품을 놓을 수 있다.
임기가 2년인 위원 대부분은 서울시 공공미술자문회의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이다. 위원장은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교수가 맡는다.
외부전문가로는 김상규 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학과 교수, 김장언 미술평론가,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상임이사, 신중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양현미 상명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유석연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 교수, 호경윤 미술평론가가 위촉됐다.
서울시의회에선 더불어민주당 문상모 시의원과 자유한국당 이혜경 시의원이 참여한다. 서울시 내부에선 백기영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이 위원직을 맡았다.
위원회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기 때문에 조만간 시유지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내 동상 건립 안건을 심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용삼 박정희기념재단 기획실장은 "동상 건립을 위한 서류 접수 준비를 모두 마쳤다"며 "위원회가 꾸려졌으니 바로 서류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공미술위원회는 심의 접수일로부터 2개월 이내로 열리게 돼 있고, 위원회의 심의 결과에 대해서는 1회에 한해 재심의를 신청할 수 있다.
◇ 이미 완성된 조형물 심의는 처음
공공미술위원회는 심미성, 장소와의 연관성, 역사적 사실관계 등을 따져 동상을 설치할 수 있는지 결정한다.
문제는 위원회 심의 전에 높이 4.2m, 무게 3t의 박정희 전 대통령 청동 동상이 이미 완성돼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공미술위원회는 미술작품의 기본설계나 계획을 심의한다"며 "이미 완성된 작품이 심의 안건으로 상정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설계 단계에서 서울시 자문단이 고쳐야 할 내용을 지적하면, 이를 반영해 수정하는 식으로 조형물 건립이 이뤄져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5년부터 올해 10월까지 서울시의 동상·기념비 심의를 한 번에 통과한 것은 전체 안건 9건 중 2건뿐이다.
크기(설계안)가 10m에 이르렀던 강서구 개화산전투 전사자 추모 조형물은 두 차례 부적합 판정을 받고 세 번째 심의에서 건립 승인을 받았다. 지나치게 크거나 위압적인 조형물은 사회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다수 나와 조형물 크기를 대폭 줄여야 했다.
그러나 동상이 이미 만들어졌다고 해서 위원회가 심의를 거부할 수는 없다.
박정희 동상을 제작한 '이승만·트루먼·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의 유동렬 간사는 "이미 5억원을 들여 만든 작품의 크기를 문제 삼는다면, 동상을 아예 놓지 말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며 "동상을 설치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한 행정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상건립추진모임은 위원회에서 동상 건립 안건이 부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동상을 놓을 다른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
이들은 당초 박정희 동상을 광화문광장에 놓기 위해 서울시에 비공식적으로 의사를 타진했으나, 한 공간에 3개의 동상이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받았다고 한다.
두 번째 후보지였던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내 건립도 타진했으나 한국무역협회 측에서 난색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정희 동상과 함께 제작한 트루먼·이승만 동상은 용산전쟁기념관에 기부하려 했으나 역시 기념관 측이 어렵다는 뜻을 밝혀왔다.
동상건립추진모임이 3명의 전 대통령 동상을 만들기 위해 투입한 비용은 모두 16억 원이다. 이 비용은 이름이 밝혀지기를 원치 않는 독지가 한 명이 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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