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기본소득 논쟁 재점화…8개 자치단체장 "시범도입 추진"
대선 때 논쟁 점화…사회당의 잇따른 선거 참패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녹색당 기본소득 크라우드펀딩 시작…자치단체들 "실험실 되겠다"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의 일부 자치단체들이 기본소득 보장제 실험에 나서기로 했다.
좌파 정당인 유럽생태녹색당도 기본소득 보장 실험을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하겠다고 밝히는 등 프랑스에서 다시 한 번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이 일고 있다.
파리 북부 교외지역인 센생드니 등 프랑스의 8개 지방자치단체장은 26일(현지시간) 기본소득 보장제도의 시범도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주간지 '주르날 뒤 디망슈'에 공동 기고문을 내고 "기본소득은 1988년 도입된 최저소득보조금(RMI)의 보편적인 정신을 되살려 모든 이에게 기초 소득을 보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센생드니의 스테판 투르셀 주지사 등 중도좌파 사회당 소속 8개 주(州·데파르트망) 단체장이 공동선언에 참여했다.
이들은 "기본소득은 노동의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실직자들이) 일자리를 다시 찾을 기회를 줄 것"이라며 "정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견고하고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한 모델을 구축하는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8개 자치단체장은 현재 프랑스에서 시행되는 청년수당(RSA)이나 최저생계비 보장제의 한계와 복잡성 등으로 인해 900만 명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본소득 제도의 실험실이 되겠다"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헌법 개정에 착수하라고 요구했다. 마크롱은 지난 23일 지방자치단체장 회의에 참석해 지방자치 확대를 위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자치단체장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본소득 실험에 나설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기본소득 보장제도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했다.
중도좌파 사회당의 대선후보 브누아 아몽 전 교육부 장관이 당시 핀란드가 도입한 기본소득 보장제를 프랑스에도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소득 불균형 해소와 일자리 부족에 대한 대안으로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매달 600∼750유로(77만∼96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구상이었지만 우파 진영은 재원 마련의 어려움과 근로의욕 저하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다.
기본소득 논쟁은 아몽이 대선 1차 투표에서 6.36%의 초라한 득표율로 5위에 그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사회당은 대선이 끝나고 한 달 뒤 치러진 총선에서는 하원 의석수가 10분의 1로 쪼그라들며 존폐의 갈림길에 내몰린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좌파성향의 프랑스 유럽생태녹색당(EELV)이 기본소득 보장제 실험을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은 다시 불붙었다.
유럽생태녹색당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모인 자금으로 추첨을 통해 뽑힌 사람에게 1년간 매달 1천 유로(129만원 상당)의 소득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도록 국가가 돈을 지급하는 제도로, 핀란드가 세계 최초로 시범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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