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대책이 '강제 퇴거'…도마 오른 中베이징시 '막무가내 행정'

입력 2017-11-26 18:11
화재대책이 '강제 퇴거'…도마 오른 中베이징시 '막무가내 행정'

임대주택 주민·영세업자 내쫓자 지식인 100여 명 항의 서한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중국 베이징시 당국이 화재 예방을 이유로 임대주택 주민과 영세사업장 종사자 등을 막무가내로 퇴거시켜 큰 반발을 사고 있다고 홍콩 명보가 26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8일 밤 베이징시 남부 외곽 지역인 다싱(大興)구 시홍먼(西紅門)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불이 나 주민 19명이 숨진 사고가 발생하자 시 당국은 긴급 화재대책을 마련, 시행하기로 했다.

차이치(蔡奇) 베이징시 당 서기는 "시내의 모든 화재 위험 지역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화재를 발생시킬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철저하게 제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베이징시는 21일부터 다싱구를 비롯한 시 외곽 지역의 저가 임대 아파트, 영세 공장 밀집지역, 영세 상가 등에 "수일 내에 해당 지역을 떠나야 하며, 이주하지 않을 경우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고 통보했다.

시는 통보 직후 단전과 단수 조치에 들어가, 이 일대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이주에 나서야 했다.

문제는 시가 아무런 이주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강제퇴거 조처를 했다는 점이었다.

시 외곽 지역의 임대 아파트 등에는 외지에서 이주해 온 저임금 노동자들은 물론 수많은 봉급생활자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 또한 대책 없이 쫓겨나야 했다.

한 언론사 기자는 시홍먼 화재를 취재하던 중 퇴거 통보를 받았는데, 그 이유가 기자가 묵던 여관마저 시 당국의 퇴거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이 기자가 밤새 거리를 헤매다 감기몸살에 걸리는 웃지 못할 일까지 발생했다.

더구나 공익단체 등이 강제 퇴거자들에게 숙소와 생활필수품 등을 마련해주려고 했으나, 시 당국은 이마저 저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일이 알려지자 지식인 100여 명은 중국 공산당 중앙과 국무원, 전국인민대표대회 등에 공개 항의서한을 보내기까지 했다.

베이징의 정치평론가 장리판(章立凡)과 허웨이팡(賀衛方) 베이징대 교수 등 서한에 참여한 지식인들은 "시 당국은 강제퇴거 조치를 즉각 중단하고, 공개 사과와 함께 퇴거자 보호 조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장리판은 "처음에는 소수만 참여하려고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이 불어났다"며 "너무도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모두 참을 수 없어 사회 정의를 위해 나서게 됐다"고 전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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