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청원에 헌재 주목…재판관 9명 중 6명 "손질 필요"

입력 2017-11-26 17:01
낙태죄 청원에 헌재 주목…재판관 9명 중 6명 "손질 필요"

5년 전 합헌결정 뒤집을까…조국 靑수석 국민청원 답변서 '위헌심판' 언급



(서울=연합뉴스) 안 희 기자 = 청와대가 26일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대해 정부 차원의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통해 현황 파악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한편 "위헌심판을 통해 사회적·법적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언급하면서 헌법재판소가 심리 중인 낙태죄 위헌법률심판 추이에 관심이 쏠린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은 이날 20만명이 넘어선 낙태죄 폐지 청원에 답변하면서 내년에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벌여 현황 등을 정확히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낙태죄 폐지에 대한 찬반 입장을 드러내기보다는 정확한 실태조사에 입각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와 함께 조 수석은 "헌재도 다시 한 번 낙태죄 위헌법률심판을 다루고 있어 새로운 공론장이 열리고 사회적·법적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언급했다.

낙태죄 조항은 생명을 다루는 사안인 만큼 그 존폐를 따지려면 실태조사뿐 아니라 법적 평가가 수반돼야 하는데, 낙태죄 조항이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지 등 사법적 평가에 대해서는 헌재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진다.

조 수석은 답변에서 형법상 '낙태'라는 용어의 부정적 함의를 고려해 낙태 대신 모자보건법상 '임신중절'이라는 표현을 쓰겠다고 밝히는 등 관련 이슈가 예민한 주제라고 전제하면서 헌재의 지난 2012년 합헌결정 사례를 소개했다. 임신중절과 관련한 법 제도 현황과 그간의 논의를 비롯해 2012년 당시 합헌결정이 내려질 때 합헌과 위헌 주장의 근거도 설명했다.

이번 청원과 조 수석의 답변에서 보이듯 낙태·임신중절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가장 최근 사례라고 할 수 있는 헌재의 2012년 판단이 내려진 지 어느새 5년이 흘렀고, 그동안 사회적인 인식 변화나 학계의 추가 논의 등 변화 요인이 있었다는 점에서 조 수석의 답변은 사회 변화를 충분히 고려해 정책적 재검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현행법 체계에 문제가 있는지는 최고 사법기관인 헌재의 판정 결과를 지켜봐야 하며 그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헌재는 지난 2월 낙태죄 조항인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이 위헌인지를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 사건을 접수해 심리 중이다.



'자기낙태죄'로 불리는 형법 269조 1항은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270조 1항은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이다.

헌재가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는 것은 2012년 8월 '동의낙태죄' 규정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후 5년 만이다.

당시 헌재는 "태아는 그 자체로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생명권이 인정돼야 한다"며 처벌 규정을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도 심리에 참여한 8명의 재판관 중 절반인 4명이 위헌 의견을 낼 정도로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위헌정족수인 6명에 못 미쳐 합헌결정이 내려진 사건이었다.

5년의 세월이 흐른 이번 사건에서는 그간 달라진 여론이 어떻게 반영될지를 두고 관심이 다시금 집중된다.

최근 유남석 신임 헌법재판관과 이진성 신임 헌재소장이 잇따라 임명되면서 헌재가 완전체인 '9인 재판관 체제'를 갖춘 점은 낙태죄 위헌심판 심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을 낳게 한다.

특히 9명의 재판관 중 6명은 국회 인사청문회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낙태죄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손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헌재가 기존 결정을 뒤집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법조계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이유다.

이진성 신임 헌재소장은 지난 22일 인사청문회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이 했듯이 (임신 후) 일정 기간 내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유남석 재판관 역시 지난 8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제출했던 서면답변서에서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인한 낙태는 의사의 상담을 전제로 어느 정도 허용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김이수 재판관도 지난 9월 국회에서 "예외적으로 임신 초기 단계고 원하지 않는 임신의 경우와 같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우선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낙태죄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강일원·안창호·김창종 재판관도 과거 인사청문회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조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반면 서기석·조용호·이선애 재판관은 낙태죄 폐지와 관련해 별다른 의견을 드러내지 않았다.

낙태죄 손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법적 의견에는 낙태죄 처벌 법규가 '태아의 생명권'만 지나치게 강조한 측면이 있다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합리적으로 조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낙태죄 조항의 개선 필요성을 언급한 헌법재판관 6명은 조금씩 견해차가 있기는 해도 이런 문제의식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물론 향후 헌재의 심리 과정에서 재판관들의 입장 변화에 영향을 줄 여러 가지 변수가 있는 만큼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임신중절 실태와 해외 정책사례 등도 재판관들의 의견 형성에 반영될 만한 요인으로 꼽힌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임신중절 음성화나 여성의 생명권 문제 등 2012년에 충분히 다뤄지지 못한 사안들이 이번 헌재 심리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와 입법부의 정책 결정 추이 등도 고려할 만한 사항일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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