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헝그리정신 있었죠"…가수·작곡가로 만난 민해경·김범룡

입력 2017-11-27 08:40
수정 2017-11-27 09:36
"우린 헝그리정신 있었죠"…가수·작곡가로 만난 민해경·김범룡

민해경, 김범룡 작곡 '위 러브 유' 발표…"필·열정 살아있는 민해경에 감동"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서로 안 지 30년이 넘었지만, 가수와 작곡가로 만난 것은 처음이다.

1979년 데뷔해 서구적인 미모와 시원한 가창력으로 무대를 휩쓴 민해경(본명 백미경·55)과 1985년 데뷔와 함께 '바람 바람 바람'으로 가요계를 평정한 김범룡(58)이다.

1990년대 녹색지대와 진시몬의 앨범을 제작하며 프로듀서로도 활약한 김범룡은 민해경이 4년 만에 발표하는 음반의 타이틀곡 '위 러브 유'(We Love You)를 작곡했다.

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첫 작업이었지만 '오랜 지기'답게 호흡이 무척 잘 맞아 놀라웠다고 했다. 세월의 깊이만큼 빛바랜 추억이 많다 보니 시간을 거스른 이야기들로 꽃을 피웠다.

"전 1980년대 가수고, 해경이는 1970년대 데뷔했으니 가요계 선배죠. 하지만 제가 나이가 몇살 많아 편하게 호칭해요. 이번 작업을 하며 정말 놀랐어요. 해경이는 '필'과 열정이 살아있고, '아이언'(Iron) 소리 같은 독특한 보이스 컬러가 20대 때와 다르지 않았어요. 오히려 젊은 시절보다 더 진지해졌고 자신의 음악에 책임질 줄 아는 자세가 멋있어서 감동받았죠."(김범룡)

이 곡의 가사를 쓴 민해경은 "데뷔 이래 처음 작사를 했는데 오빠가 잘 썼다고 칭찬해줬다"며 "너무 잘 아는 분과 작업하니 부담 없었고 일사천리로 작업이 진행됐다"고 만족스러워했다.



◇ 민해경 "직감으로 선곡, 첫 작사 도전" vs 김범룡 "내가 부르려던 곡"

'위 러브 유'는 2006년 이후 11년간 음반 공백기이던 김범룡이 내년 새 음반을 낼 때 자신이 부르려고 만들어둔 곡이었다.

김범룡은 "내가 신곡으로 쓰려던 곡을 줬더니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며 "음악 스타일이 해경이의 이전 히트곡과 다른 분위기여서 무척 의외였다. 나도 성격이 급한데 해경이는 하나를 목표로 하면 푹 빠지는 스타일이더라. 내가 곡을 썼지만 어떤 악기를 쓸 지까지 논의하며 작업 전체를 함께 했다"고 설명했다.

민해경은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직감처럼 이 곡을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이 나이에 사랑 노래는 싫어서 '내가 가사 써봐도 돼?'라고 했더니 오빠가 '좋지'라고 했다. 가사를 쓰는 게 정말 어렵더라. 오빠의 조언을 구해 집안일을 하면서도 매분, 매초 가사 생각만 했다"고 웃었다.

미디엄 템포의 경쾌한 멜로디에는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을 다독이듯, 좌절하지 말고 헤쳐나가자며 용기와 희망을 전하는 노랫말이 담겼다. 두 사람의 인맥 덕에 후렴구에는 김세환, 혜은이, 남궁옥분, 김장수, 윤태규, 한승기 등 쟁쟁한 선후배 뮤지션들이 코러스로 참여했다.

'아(AH) 아픔속에서 머물러 있나요/ 오! 아이(OH! I) 세상을 향해 크게 소리쳐 봐요/ (중략) 거센 바람 불어도 쓰러지지 말아요/ 세상은 그대가 그대가 필요해요'('위 러브 유' 중)

김범룡은 "해경이에게 주문한 것은 '아이들'을 생각하자는 것이었다"며 "방 안에서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 절망적인 청년들이 너무 많다. 사회가 각박해지며 더 힘들어졌다. 인생을 좀 살아보니 어려울 때 손길을 잡아주는 누군가가 있고, 기회도 생기는 것 같다. '세상은 그대가 필요해요'란 가사가 핵심인데 모두 세상에 필요한 존재이니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고 강조했다.



◇ 민해경 "목소리 망가지지 않으려 노력" vs 김범룡 "채무 딛고서 다시 곡 써져"

올해로 데뷔 38주년을 맞은 민해경은 중견 가수 중 게으름 피우지 않고 꾸준히 음반을 내는 가수다.

1979년 말 '누구의 노래일까'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 이 곡으로 TBC 동양방송이 주최한 '서울국제가요제'에 나가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1981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신인상을 받았다. 이후 '내 마음 당신 곁으로', '내 인생은 나의 것', '사랑은 이제 그만',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그대 모습은 장미', '보고 싶은 얼굴' 등 다수의 히트곡을 냈다.

그는 "전 제가 망가지는 것 자체를 스스로 용서 못 할 것 같다"며 "항상 체중을 유지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도 목소리가 망가지기 싫어서다. 그런 노력이 없으면 꾸준히 음반을 낼 자신감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해경의 계획성과 준비성, 꼼꼼함에 놀랐다는 김범룡은 반면 가수로서는 공백기가 꽤 길었다. 2003년 8집 '돈키호테'와 2006년 가수 박진광과 낸 '프렌드'(Friend)를 끝으로 활동이 뜸했다.

"사실 7~8년간 보증 문제로 채무 때문에 아무것도 못 했어요. 노래를 부르려고 행사에 가면 채권자들이 찾아 왔으니까요. 지금은 그 굴레에서 벗어났고 비로소 곡들이 써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내년 3~4월에는 3~4곡을 담은 제 음반을 꼭 낼 겁니다."(김범룡)

두 사람은 달라진 음악 환경을 피부로 느낀다면서 지금의 후배들을 보면 부럽고 자랑스러우면서도 안쓰러운 면이 있다고 했다.

김범룡은 "CD에서 음원 시장이 되면서 예전엔 음악에만 충실하면 됐지만 이젠 비주얼과 영상까지 필요한 요소가 많아졌다"고 했다. 민해경은 "예전에는 실력을 타고 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가수로 데뷔했지만 요즘은 훈련 과정을 거치는 것이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 후배들은 좋은 시스템의 혜택을 받고 세계 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니 부럽고 자랑스러운 측면이 있어요. 인구 5천만 명 되는 영어권도 아닌 나라에서 세계 팬들을 이끄니까요. 물론 음악이 천편일률적으로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안타깝지만요."(김범룡)



◇ 김범룡 "'바람 바람 바람' 작곡 배경은" vs 민해경 "'내 인생은 나의 것' 금지곡 된 이유는"

힘들었던 시절의 옛이야기들은 김범룡의 입담 덕에 웃음에 섞여 나왔다.

충북대학교 서양화과에 진학한 김범룡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 천재란 소리를 들었다"며 "내 인생 가치관이 '놀다 죽자'였는데 음악은 가장 재미있는 놀이었다. 고교 때부터 만든 곡이 100곡은 됐다. 군대를 다녀와 가세가 기울어져서 휴학계를 내고 그때부터 돈을 벌었다. 그림이나 막노동으로는 돈이 안 돼서 대학 때부터 기타를 치며 노래했다"고 떠올렸다.

인생역전을 시켜준 데뷔곡 '바람 바람 바람'은 '송골매에게 팔라'는 제안을 받았던 곡이다. 이 곡을 만든 배경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제대 후 복학했는데 돈이 없어 부자 친구와 한방을 썼어요. 룸메이트가 부산과 음성에 사는 여자 둘과 동시에 연애했는데 밤늦게 단칸방에 음성 여자가 찾아 왔죠. 마침 제 친구는 부산 여자가 와서 만나러 나갔고요. 단칸방에 룸메이트의 여자친구가 있으니 잠도 못 자고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죠. 그 여자의 시점에서 '문밖에는 귀뚜라미 울고/ 산새들 지저귀는데/ 내 님은 오시지는 않고/ 어둠만이 짙어가네~'라는 가사를 썼죠."(김범룡)



웃음을 터뜨린 민해경은 "우리 땐 다들 '헝그리 정신'이 있었다"며 자신 역시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가수가 됐다고 했다.

"저도 어린 시절부터 돈을 벌려고 무대에 올랐어요. 그래서 인생곡을 딱 한 곡 꼽기 어렵죠. 제 곡들이 저의 삶을 지탱해줬으니 모두 고마운 곡들이에요. 전 무대가 두려운 적이 없었고, 곡을 참 잘 받는 운도 있었어요."(민해경)

민해경은 1983~85년 일본 빅터레코드와 계약해 일본 활동도 했다. 그는 가수 김현준과 듀엣한 '내 인생은 나의 것'이 KBS '가요 톱 10'에서 4주 연속 1위를 한 뒤 '청소년에게 반발심을 유도한다'며 금지곡이 되자 방송 활동이 어려워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회의 요청으로 '아! 대한민국'을 녹음했지만 민해경이 일본 활동을 택하면서 정수라가 새로 불러 유명해졌다.

민해경은 "일본 생활이 가장 힘든 시기였다"며 "30만 원을 들고 갔는데 악바리처럼 일본어 공부를 하며 여러 장의 음반을 냈다. 그때 지진을 처음 경험했는데 원래 겁이 많아서 숙소 근처 가게서 새벽까지 밤을 새우곤 했다"고 기억했다.

어느덧 성인이 된 자녀를 둔 두 가수는 자식 얘기에도 '쿵짝'이 맞았다. 민해경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 하나를, 김범룡은 27살, 22살 두 아들을 뒀다.

민해경은 "딸이 지금 대학교 3학년인데 기숙사에 있다"며 "남편 성격이 정말 좋은데, 딸이 자긴 성격이 아빠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독종' 같은 엄마를 닮은 것 같다고 한다"고 웃었다.

김범룡은 "해경이 딸이 정말 밝게 잘 자랐다"면서 "난 아내가 재미교포여서 애들이 미국에서 공부했는데, 둘째가 음악을 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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