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트렁크 입은 이흑산 "나는 카메룬-코리언"

입력 2017-11-25 20:41
태극기 트렁크 입은 이흑산 "나는 카메룬-코리언"

첫 국제전서 일본의 바바에게 3라운드 KO승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저를 지원해주고 응원해준 분들을 위해 꼭 KO로 이기고 싶었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카메룬 출신의 난민 복서 이흑산(34·본명 압둘레이 아싼)은 25일 서울 강북구 신일고 체육관에서 열린 복싱매니지먼트코리아(이하 복싱M) 주관 웰터급(66.68㎏급) 경기에서 일본의 바바 가즈히로(25)에게 3라운드 2분 54초 만에 KO승을 거뒀다.

오른손 잽으로 거리를 유지한 뒤 왼손 훅으로 카운터를 노리는 전략을 짜고 경기에 나선 이흑산은 3라운드에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흑산은 고개를 숙이고 파고들어 온 바바의 턱에 왼손 어퍼컷을 정확하게 꽂아넣었다.

앞으로 쓰러진 바바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이흑산은 첫 국제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6전 5승(3KO) 1무로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경기 뒤 이흑산은 경기장을 찾은 많은 학생에게 둘러싸였다. 여고생들은 이흑산에게 사진 요청을 하며 "핸섬(handsome·잘생겼다)"을 연발했다. 이흑산은 여고생들에게 수줍은 표정으로 "고맙다"고 답했다.

이흑산은 "첫 국제전에서 승리해 무척 기쁘다"며 "나를 지원해주고 응원해주는 분들을 위해 꼭 KO로 이기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을 지켜 매우 좋다"고 웃었다.

그는 "1∼2라운드에서는 일본 선수의 스타일을 알기 위해 잽을 날리면서 상대를 탐색했다"며 "1∼2라운드에서 스타일을 파악했고,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흑산은 "3라운드에서 잽을 계속 날리며 일본 선수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정확하게 턱에 펀치를 꽂아넣었다. 일어나지 못하리라고 확신했다"고 덧붙였다.



이흑산은 원래 카메룬 군대 소속의 복싱 선수였다. 2015년 8월 무주에서 열린 세계 군인선수권대회에 카메룬 대표로 참가한 이흑산은 국내 망명을 신청했다. 군인 신분이었기에 탈영이었다.

강제 송환의 위기 속에서도 그는 복서의 길을 놓지 않았다. 이경훈 코치(전 한국 미들급 챔피언)를 만나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프로에 입문한 이흑산은 국내 무대에서 승승장구했다.

올해 5월 27일에는 복싱M 슈퍼웰터급 한국 챔피언에 올랐고, 드디어 7월에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국내에서 적수를 찾지 못한 이흑산은 국제무대로 눈길을 돌렸다. 이날 일본 선수인 바바와의 대결이 이흑산에게는 첫 국제전이었다. 이흑산은 태극기가 그려진 트렁크를 입고 경기에 나서 화끈한 KO승을 거두며 국제무대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그는 이제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느끼느냐는 말에는 "나는 카메룬-코리언"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흑산은 이제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황현철 복싱M 대표는 "이흑산과 한국 웰터급 최강전 우승자 정마루(30)가 내년 4월 WBA 아시아 타이틀매치를 치르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정마루가 다음 달 일본 랭킹 1위인 재일교포 복서 윤문현과 경기에서 승리하면 둘의 대결이 성사된다.

이경훈 코치는 "이흑산이 정마루를 이겨서 아시아 벨트를 차지하면 세계 랭킹전을 치를 기회가 생긴다"며 "이흑산이 그 단계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남은 시간 잘 다듬어보겠다"고 말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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