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상 받은 블라스티 씨어리 "관객, 당신이 시작하라"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내년 3월 4일까지 수상전
(용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23일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 외벽에 '당신이 시작하라'는 글자가 적힌 거대한 걸개가 내걸렸다.
2017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을 받은 영국 작가 그룹 블라스트 씨어리(Blast Theory) 수상기념전 개막을 알리는 플래카드다. 블라스트 씨어리에는 현재 닉 탄다바니치, 주 로우 파, 매트 애덤스가 속해 있다.
이 강렬한 명령문은 1991년 런던에서 결성된 그룹의 작업 주제를 함축한다.
그룹 이름 자체도 1990년대 초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에 맞서 이론을 배격하고 우리는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멤버도 일부 바뀌고 작업 방식도 퍼포먼스에서 영상 스트리밍, 인터넷 방송, 게임, 영화 등으로 확대됐지만, '관객'과 '참여'라는 주제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이수영 큐레이터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들에게는 관객이 감상하는 주체가 아닌, 작품을 시작하는 주체"라면서 "관객이 행동하고 반응하고 응답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끝까지 작품을 끌어가는 존재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관객'과 '참여'라는 주제를 놓고 다양한 매체로 실험해온 씨어리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 7점이 나왔다.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영국과 한국에서 각각 촬영한 5개의 장면을 연결한 '앞을 향한 나의 관점'이다.
고정된 카메라를 통해 360° 파노라마로 촬영된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도심 속 어딘가에 앉아 직접 두 대도시의 풍경을 감상하는 기분이 자연히 든다.
관람객은 찬찬히 관찰하며 또다른 관객이 녹음한 내레이션을 들을 수 있다.
관람 도중 작품의 뒤편에 마련된 공간에서 영상들을 보면서 자신이 남기고 싶은 말들을 녹음하는 일도 가능하다. 그렇게 녹음된 독백은 다시 작품의 일부가 된다.
미래를 상상한 '2097: 우리는 스스로를 끝냈다', 재난을 겪는 일본 아이치에서 제작된 '내가 평생동안 할 일' 등도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관객의 참여를 핵심으로 하는 작품이다.
주 로우 파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기초 아이디어를 수립한 뒤 어떠한 질문을 어떻게 던질지는 일반 시민과 함께 논의한다"면서 "우리 세 작가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유효한 물음인지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옆에 앉은 매트 애덤스도 "변화나 권력 등을 건드리는 질문은 거대할 수도 있지만 개인의 삶, 우리의 일상과도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작품은 전시장을 떠나, 우리 사회 속에서 실천을 촉구하는 메시지로 읽히기도 한다.
국정농단에서 시작된 지난 일 년여의 격변기 속에서 권력과 사회를 비판하는 전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블라스트 씨어리의 국내 첫 개인전은 더 의미가 있다는 게 백남준아트센터 설명이다.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사회 참여, 비판 전시들이 많이 열리고 있다"면서 "한 번 이슈화한 뒤 곧바로 사그라지는 작업들이 창궐한다는 생각이 드는 시기에 이번 전시는 또 다른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 관장은 이어 블라스트 씨어리를 두고 "진정성과 깊이감이 있으면서 우리 사회 문제의 근본 원인부터 현재의 보편성까지 모든 맥락을 다 꿰뚫으면서 하는 작가"라고 강조했다.
전시는 내년 3월 4일까지. 문의 ☎ 031-201-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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