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자'에 종신형 내려지자 스레브레니차 여성들 기쁨의 눈물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들은 믈라디치 옹호…"그는 여전히 우리 영웅"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신이여, 감사합니다. 죽어간 우리 아들들을 위해 당신께 입을 맞춥니다."
유엔 산하 국제 유고전범재판소(ICTY)가 2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라트코 믈라디치 전 세르비아계군 사령관에 대해 보스니아 내전 당시 집단학살 등의 혐의를 인정해 종신형을 선고한 순간, 8천명의 희생자가 나온 스레브레니차 마을의 여성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발칸반도의 도살자'로 불리는 믈라디치는 지난 1995년 이슬람 신자들이 주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동부의 스레브레니차에서 성인과 청소년을 비롯한 남성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것을 비롯해 대량학살, 인권유린,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법정에 섰다.
8천여 명의 이슬람계 주민들이 잔인하게 살해된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자행된 최악의 대량 학살로 여겨진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ICTY의 판결을 앞두고 스레브레니차 희생자 유가족들은 스레브레니차 인근의 포토차리 마을에 건설된 학살 추모 센터에 함께 모여 선고 장면이 생중계되는 대형 스크린을 숨죽인 채 주시했다.
ICTY 판사가 믈라디치에게 종신형을 선고하는 순간, 센터에 모인 유가족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일부 여성들은 회한과 기쁨이 뒤섞인 울음을 터뜨렸다.
믈라디치가 화면에 잡히자 "이 쓰레기!"라며 큰 소리로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도 목격됐다.
스레브레니차에서 남편과 아들, 아버지를 한꺼번에 잃었다는 네드치바 살리호비치라는 여성은 "내 아들을 죽인 믈라디치가 이제 헤이그에서 죽게 됐다"며 "정의가 실현돼 기쁘다"고 말했다.
반면, 스레브레니차 학살 당시 42명의 일가 친척을 잃은 아이사 우미로비치는 "믈라디치가 1천 번 종신형을 받더라도 죗값을 치르지는 못할 것"이라며 그가 저지른 잔악 행위에 비춰 종신형 선고도 충분치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모든 보스니아인들이 이번 판결에 환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AFP통신은 전했다.
스레브레니차 학살 추모 센터가 있는 포토차리 마을을 약간 벗어나자 군복을 입은 믈라디치의 사진과 함께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벽보가 곳곳에 붙어있어 인종·종교에 따라 여전히 확연히 다른 보스니아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옛 유고연방에서 독립한 보스니아는 전체 인구 약 450만 명 가운데 보스니아계가 48%, 세르비아계가 37%, 크로아티아계가 14%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소코라치에 거주하는 퇴역 군인 출신의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인 젤리코 다치치 역시 "언젠가 역사가 진실을 알려줄 것"이라며 믈라디치를 옹호했다.
세르비아계 보스니아 지도자인 밀로다르 도디크는 ICTY 판결 하루 전인 22일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믈라디치는 세르비아인들의 전설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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