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In] 창원터널 사고 20일… 터널이 문젠가 지입제가 문젠가
지자체는 협의체 구성 '터널 안전'에 방점… 트럭기사 "지입제·단속강화가 우선"
(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화물차가 폭발하면서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창원터널 사고가 발생한 지 약 20일이 지났다.
이후 경남도와 학계 전문가, 도로교통공단 등은 창원터널 연결도로 사고예방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해 구간단속 등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트럭 기사들은 이번 사고 근본원인이 도로사정이 아닌 과적을 강요하는 화물 지입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터널을 새로 뚫고 구간단속을 하더라도 지입제가 철폐되지 않는 한 유사한 사고는 재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관련 기관의 후속 조치가 현장의 목소리와 엇박자를 내는 셈이다.
영남 일원에서 트럭운전자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 부산신항만이다.
부산신항만은 418만㎡ 부지에서 매년 17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의 화물을 처리해 3천500억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린다.
다양한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복합물류거점으로 도약하겠다는 설립취지를 보여주듯 지난 22일 부산신항만은 좌우로 끝도 없이 늘어선 컨테이너 사이로 화물트럭 수십 대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모(53)씨는 이날 창원에서 경북으로 화물을 이송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그는 일감이 밀리면 2∼3일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식사도 차 안에서 해결해야 할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주로 알선업체로부터 어플로 연락을 받고 화주에게 가는데 과적 단속을 피하고자 연락을 줄 때 '톤(t)'이라고 하는 대신 '턴'이나 'ㅌ'만 숫자 뒤에 붙여 연락하는 꼼수를 쓴다.
가령 5t 트럭에 10t 화물을 실을 경우 '10턴 화물'이라고 입력해 보낸다는 것이다.
김 씨는 "단속을 피하려고 단위를 틀리게 쓰는 꼼수를 쓰는데 이게 통하는 게 현실"이라며 "지입제와 기사 수입을 착복하는 알선업체부터 손보지 않으면 창원터널과 같은 사고는 언제든지 재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입제는 화물차운송사업면허를 가진 운수회사에 개인소유 차량을 등록해 일감을 받아 처리하는 제도다.
차량이 본인 명의가 아닌 회사 앞으로 돼있어 차주로선 법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운임이 낮게 책정되는 것은 물론 과적·과로까지 종용당하는 등 노동조건도 열악하다.
창원터널 사고를 일으킨 5t 트럭도 화물 적재 법적 허용치인 차량 무게의 110%(5.5t)을 훌쩍 초과한 7.8t의 유류를 싣고 운행했다.
트럭운전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관련 통계를 찾아봐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교통연구원 화물운송시장정보센터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일반화물 운전자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323.7시간이었다.
개별화물 운전자는 279시간, 용달화물 운전자는 257.5시간이었다. 화물노동자는 일반노동자 월평균 180.7시간과 비교하면 많게는 120시간, 적게는 52시간이나 더 일하는 셈이다.
이런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이유는 지나치게 낮은 수입 때문이다.
2014년 기준 일반화물 노동자의 월 순수입은 239만원, 개별화물은 187만원, 용달화물은 96만원이었다. 이는 일반노동자 평균 임금의 56% 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기사들은 교통사고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화물차 교통사고는 2013년 2만7천650건, 2014년 2만8천250건, 2015년 2만9천128건, 지난해 2만6천576건이었다.
전체 교통사고의 12%가 화물차 사고인데다 치사율은 승용차 사고의 1.43%보다 배 이상 높은 3.58%였다.
창원터널 폭발사고처럼 화물차는 한 번 사고가 나면 승용차와 달리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경남도는 창원터널 사고 뒤 '창원터널 연결도로 사고예방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분야별 민간전문가와 경찰, 도로교통공단 등 13명을 위원으로 선정해 대안을 모색 중이다.
도에 따르면 협의체에서는 구간단속, 교통안전시설 확충, 우회도로 개설 등 다양한 안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트럭 기사들은 이와 같은 대처는 일반 교통사고라면 몰라도 화물트럭 사고예방과 관련해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화물적폐청산위원회 김홍준(68) 위원장은 "우선 지입제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며 표준운임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해도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기사들을 위한 것으로 지입제와 별개"라며 "그동안 수차례 화물트럭 관련 논의가 있었으나 지입제 자체를 손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입제로 인해 과적이 일상이 되고, 단속을 피하려고 꼼수를 쓰거나 국도로 돌아가느라 과로하게 돼 기사들이 위험에 노출된다"며 "화물정책이 대부분 지입회사의 이권을 보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만큼 지자체나 관련 기관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4.5t 트럭을 40년 몰았다는 그는 과거 알선업체로부터 '10t이 안 되는 화물인데 좀 실어달라'고 애플리케이션으로 연락이 와서 갔더니 15t이 넘는 화물 적재를 종용했다고 했다.
이를 관할 지자체에 신고하고 행정처분을 요구했으나 지자체 공무원은 '앱과 같은 전자배차는 행정처분 대상이 아니다'는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했다.
김 위원장은 "과적 적발을 해야 할 공무원이 과적을 조장하고 비호하는 게 현실"이라며 "이처럼 느슨한 단속 사례는 주변 기사들에게도 비일비재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와 관련해 경남도 관계자는 "현재 전문가들이 현장 답사를 통해 여러 가지 대안을 고심 중이며 내달 20일 최종회의를 통해 결론이 날 것 같다"며 "개별 사고가 아닌 창원터널의 전체적인 교통사고량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협의체로 트럭이 아닌 터널 안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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