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바링허우 작가의 '휘어진 막대'에서 엿보는 권력의 폭력
아라리오서울서 개인전 '배후의 조정자' 23일 개막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잘린 손, 철창, 타일을 바른 욕실, 거대하게 휘어진 막대…….
22일 중국 작가 가오 레이(37)의 개인전 '배후의 조정자' 개막을 하루 앞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의 지하 전시장은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가오 레이의 한국 개인전은 2012년 아라리오갤러리 이후 5년 만이다.
작가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 권력과 개인의 관계 등을 파고드는 작업을 해왔다.
2012년 개인전에서는 회화와 사진을 통해 직접 현실을 고발하거나 대상을 겨눴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좀 더 은유적으로 접근한다.
작가는 2009년 정부가 베이징 재개발을 목적으로 자신의 작업실을 무단 철거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그때 매우 분노했기에 2009~2010년 직설적인 작품이 많이 담겼다. 이제는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한 방식으로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권력과 개인의 관계를 다룬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전시 제목과 같은 이름의 휘어진 막대다.
이 막대는 중국 골동품 시장에서 구한 것으로, 산악지대에서 다양한 먹을거리 등을 실어나르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막대 양 끝에는 고압 전기 볼트에 연결됐었던 세라믹 절연체가 붙어 있다.
작가는 "원래 나무일 때는 직선에 가까운데, 사람들의 폭력과 회유로 막대가 휘었음을 보여준다"면서 "인간도 사회에 의해 점점 변화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같은 층에 전시된 '자백'은 고문당하는 듯한 사람의 손을 걸어두는 모습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중간에 달린 투명한 아크릴판은 점점 눈에 보이지 않는 식으로 변하는 폭력을 의미한다는 게 큐레이터 설명이다.
1949년부터 1980년대 초까지 주로 사용된 다양한 제품들을 찍은 1층의 사진 작품들도 개인을 길들이거나 통제하는 권력의 존재를 상기한다.
산아제한을 홍보하는 영상의 필름이 담겼던 통, 문화대혁명이 끝나갈 시기에 등장했던 계산기 등에서 그는 권력의 그림자를 찾아볼 것을 제안한다.
권력에 천착한 작품을 둘러보다 보면 중국의 현실이 포개질 수밖에 없다.
1980년에 태어나 '바링허우'로 분류되는 작가는 "이 작품들을 통해 중국을 비평하거나, 국가로부터 받은 피해를 보고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현대 사회와 문명에서 지배층과 권력층의 보이지 않는 폭력, 세뇌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 당국이 자유를 억압하는 행보로 국제사회의 규탄을 받고 있다는 지적에는 "(그런 문제를) 직접 표현하는 작가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직접 표현하지 않기에 더 많은 상상력을 써서 작업해야 하는 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작가들과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 사건이 있지 않았냐. 국가마다 모두가 자유로운 나라는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내년 1월 7일까지. 문의 ☎ 02-541-5701.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