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주의자' 이원 시인의 산문집 '최소의 발견'

입력 2017-11-22 14:22
수정 2017-11-22 16:48
'순간주의자' 이원 시인의 산문집 '최소의 발견'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아무 의미 없이 질러 대다 사라지는 아이들의 외마디 비명 같은, 신명으로 들끓어 오르는 무당의 맨발이 올라탄 작두 위 같은, '순간'이라는 뜨겁고 고통스러운 찰나가 좋다. 어쩌면 나는 순간에는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순간주의자'라고 일컫는 이원(49) 시인은 아득해진 과거나 불안한 미래가 아닌, 현재 이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을 이렇게 표현한다.

순간에 존재하려고 노력한다는 시인이 지난 순간들의 궤적을 돌아보며 써내려간 산문집 '최소의 발견'(민음사)을 냈다.

책 제목처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최소의 언어로 간결하게 정리한 글에서 문득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시인은 서울예대를 졸업하던 해 사은회에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소감을 말할 차례가 오자 오규원 산문집의 한 구절인 "한 마리의 양을 얻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한 마리의 양을 얻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이 말은 스스로 건 마법의 주문처럼 이후 시인을 지탱시켜준다.

비록 뒤늦게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포기하는 고통"과 한 마리의 양이 가진 "어둠과 울음까지도 나 혼자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나는 한 마리의 양을 갖게 되었고 그 양의 어둠과 울음을 보듬을 손은 되었"다고 고백한다.

오직 한 마리의 양을 얻겠다는 시인의 태도는 자연히 이 '순간'을 살아가고 그를 위해 다른 것들은 과감히 포기할 수 있다는 '최소주의'로 이어진다.

"최소주의의 무서움은 꼭 필요한 것을 놓는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하나를 위해 다른 것을 다 놓쳤다는 뜻이다. 꼭 필요한 한 가지에 집중해서 다른 것이 물에 다 떠내려가는 줄도 모른다는 뜻이다." (본문 170쪽)

그는 주변에서 진짜 최소주의로 사는 시인들을 보며 "제 몸이 타들어 가는 줄도 제정신이 상해 가는 줄도 모르고 시를 쓰는 시인들이 있다. 그런 시들을 보면 부끄럽고 미안하고 고맙다. 나를 다시 정신 들게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한다.

그에게 시는 어린 시절 어두운 가족사의 상처를 통과해 세상과 이어주는 매개였고 매 순간 자신을 살게 하는 언어였다.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나서도 유목민처럼 어느 곳에도 온전하게 속하지 못한다고 느끼지만, 이제는 "뿌리를 갈망한 적이 있었다고, 그러나 그것을 가질 수 없는 존재가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삶을 지그시 응시하는 이런 시선은 읽는 이에게도 잔잔한 위로가 된다.

"나는 삶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한없이 달래고 쓰다듬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이 비명 지르고 싶은 시간들이 내게도 있지만 바로 그 순간 비명을 몸 안으로 넣고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비명이 삶을 일으켜 세워 준다는 것도, 비명이 내 날개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 나는 이제 삶이 그리 비장하지 않은 것임을 안다. 시가 내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본문 35쪽)

284쪽. 1만4천800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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