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권태로운 남자와 관계에 서툰 여자의 사랑 이야기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눈으로 뒤덮인 숲속에서 사슴 두 마리가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다. 암사슴과 수사슴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듯하다가도 이내 시선이 교차한다.
헝가리 출신 감독 일디코 엔예디가 연출한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몇 차례 반복해 등장하는 사슴들의 이미지는 두 남녀를 잇는 매개체다. 영화는 제목대로 매일 밤 꿈을 공유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다.
주인공 남녀는 각자 서로 다른 부족함을 지니고 있다. 공장식 도축장 재무이사인 엔드레(게자 모르산이)는 왼쪽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도축장에 품질관리원으로 새로 들어온 마리어(알렉상드라 보르벨리)는 동료들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칠 정도로 관계에 서투르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알아버린 엔드레는 능숙하지만 권태롭다. 짧은 대화를 위해 미리 연습하고, 대화를 나눈 뒤엔 복기도 해보는 마리어의 생활은 긴장의 연속이다. 두 사람은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혼자가 편하고 때때로 외로움을 느낀다는 점에서 같다.
영화는 각자의 결핍을 서로 보완해주며 사랑을 완성하는 공식 대신 무의식의 세계를 공감의 발판으로 끌어들인다. 엔드레와 마리어는 심리상담을 받던 중 꿈의 내용이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계기로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려 하지만, 혼자 지내온 생활의 관성과 관계에 대한 서투름 때문에 삐걱댄다.
영화는 소통에 목마른 이들이 조심스럽고 힘겹게 서로 다가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엔드레와 마리어는 말수가 적고 특별한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며 둘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보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살벌하면서도 깔끔한 공정을 갖춘 도축장, 주변 인물들의 시시껄렁하고 무의미한 대화, 지나치게 단정하고 빈틈없는 마리어의 아파트 풍경이 현대사회의 소란스러운 고독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일디코 엔예디 감독은 동물 트레이너를 영입해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꿈 장면을 연출하는 데 공을 들였다. 건조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엔드레를 연기한 게자 모르산이는 헝가리 유명 출판사의 이사로, 영화 출연은 처음이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았고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30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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