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베가 통치자 일반명사이던 짐바브웨 이젠 어디로
"자식들엔 좋은세상" 기대…유력대권후보 보니 '글쎄'
식민통치 영국 "전환점 되길"…미국 "공정하게 선거해" 경고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2000년대 들어 한때 세계보건기구(WHO)가 추산한 평균수명이 36세에 불과하던 세계 최단명국 짐바브웨.
그 나라에서 무려 37년 동안 독재자로 군림, 자기 이름을 통치자의 일반명사처럼 국민 뇌리에 새겨온 로버트 무가베(93)가 드디어 퇴진했다.
대통령이라면 무가베밖에 모르던 짐바브웨 국민 사이에서는 충격적인 정변에 걸맞은 사회 변화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오르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무가베가 자진사퇴를 선언한 21일(현지시간)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와 주요 도시에서는 일단 축제판이 벌어졌다.
제이컵 무덴다 짐바브웨 의회 의장이 무가베 대통령의 사직서 제출 사실을 발표하자 환호성과 함께 군중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생후 5개월 딸을 데리고 거리에 나온 밀드레드 타디와는 "나 자신, 우리 아기, 나라 전체에 미칠 영향 때문에 마음이 들떴다"며 "우리 딸은 더 나은 짐바브웨에서 커갈 것"이라고 말했다.
짐바브웨인들은 해가 지자 하라레 대로로 나와 경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며 밤을 새울 기세로 춤추며 자축했다.
윌리엄 마콤보어는 "내가 올해 서른여섯인데 통치자라고는 단 한 명밖에 모르고 살았다"며 "새 피를 수혈할 때가 왔고, 우리는 마냥 행복하다"고 말했다.
무가베를 퇴출하기 위해 제일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군부였으나 그가 실제로 퇴진하는 데는 짐바브웨 국민의 변혁 열망이 크게 작용했다.
군부가 행로를 무가베 퇴진으로 설정하고 집권당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 애국전선'(ZANU-PF)이 탄핵을 추진한 것도 여론 때문이었다.
가디언은 "정권수호적인 쿠데타로 시작된 것이 민중봉기로 돌변했다"며 "무가베의 몰락으로 비상한 기대감이 쏟아지고 있다"고 해설했다.
인구 1천600만명의 짐바브웨는 무가베 집권기에 아프리카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산업과 농업이 전국적으로 무너지고 물가상승 속에 청년 취업률은 10%까지 떨어졌다.
무가베 대통령은 '혁명운동'이라는 말로 분식한 협박과 뇌물수수로 겨우 정권을 유지했으나 결국 측근, 동지들의 지지를 잃고 무너졌다.
짐바브웨에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는 높지만 차기 대통령 후보를 보면 상황이 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숙청됐다가 정변을 통해 유력 후보로 재등장한 에머슨 음난가그와(75) 전 짐바브웨 부통령은 무가베 못지않은 적폐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가디언은 "음난가그와가 무가베의 오른팔이었다가 퍼스트레이디의 권력이 세지면서 숙청됐다"며 "음난가그와에게도 무가베와 똑같이 수많은 부패, 인권유린 혐의가 따라다닌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음난가그와는 무가베가 퇴진한 뒤 낸 성명에서 "짐바브웨인이 모두 새 시대에 동참하도록 하고 싶다"며 "새로운 짐바브웨에서는 모두가 힘을 모아 이 나라를 가장 영광스러운 수준까지 재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요국들도 짐바브웨의 새로운 출발이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원했다.
과거 짐바브웨를 식민통치한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는 "무가베 통치의 특색이던 압제가 없는 새 진로를 개척할 기회가 짐바브웨에 왔다"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이 아름답고 잠재력이 충만한 국가에 무가베 퇴진이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거들었다.
미국은 다소 절제된 어조로 짐바브웨의 신중한 선택을 권유했다.
국무부 대변인은 "짐바브웨가 고립을 끝낼 수 있는 역사적 기회, 역사적 순간이 짐바브웨인들에게 왔다"며 "짐바브웨의 미래는 짐바브웨 사람들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짐바브웨 주재 미국 대사관은 "정부가 단기적으로 어떻게 사태를 정리하더라도 그 진로는 반드시 자유롭고 공정하며 포용적인 선거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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