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 곳이라도 뚫리면 끝"…AI와 전쟁 재개한 농민들

입력 2017-11-21 14:19
수정 2017-11-21 16:00
[르포] "한 곳이라도 뚫리면 끝"…AI와 전쟁 재개한 농민들

너도나도 스스로 방역복 챙겨입고 소독 작업에 총출동

(영암=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철새가 오가는 하늘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바이러스가 옮겨가는 것은 예방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벌써 AI와의 전쟁이 다시 시작됐네요"

전남 영암군 시종면에서 오리 4만5천여 마리를 사육하는 농민 권용진(50)씨는 21일 웃옷과 바지가 하나로 이어진 방역복에 한쪽 다리를 찔러넣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한국오리협회 영암군지부장을 맡은 그는 올해로 2년째 회원들과 'AI자율방재단'을 꾸려 방역활동에 나서고 있다.

전날 순천에서 철새 분변 유전자 분석 결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판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권씨와 동료는 긴장의 끈을 바짝 조였다.

영암에서는 모두 144개 농가가 닭과 오리 200만 마리가량을 키운다. 농민들은 행여나 바이러스라도 옮을세라 지난겨울 월례모임마저 모두 취소했다.

권씨와 동료들은 "한 곳이라도 뚫리면 끝"이라는 절박한 심정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방역복을 챙겨 입고 소독차에 오른다.

농민들은 닭, 오리사육 농가가 밀집한 시종·도포·신북면 주요 도로를 하루걸러 한 번씩 희뿌연 소독약으로 씻어낸다.

농가를 오가는 차량에도 손 세차하듯 꼼꼼하게 소독약을 뿌린다.

지역 철새도래지인 영암호에는 매일 2인 1조로 방역팀을 투입한다.



농민들은 군청 도움을 받아 지난해부터 방역차 7대를 운용하고 있다.

올해는 오리자조금관리위원회와 방역차를 모두 17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권씨는 "제 본업은 소독약 치는 방역대가 아니라 오리 키우는 농민"이라며 "고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AI를 막아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군청에만 맡기지 않고 농민들까지 방역을 거들고 나선 덕분인지 지난겨울 영암에서는 AI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올해는 작년보다 많은 농가에서 방역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암군도 철새 도래기를 맞아 AI 바이러스 침투 대비를 강화했다.

AI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고 전국 가금류 사육 농가에 48시간 이동중지명령을 내린 정부 방침에 따라 거점소독소마다 인력을 배치해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이일종 영암군 가축방역팀장은 "지난겨울에는 집에 들어가 본 적이 거의 없었다"며 "사상 최악의 피해가 났던 지난해 같은 일이 반복하지 않도록 퇴근길에도 예찰 활동을 하는 등 예방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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