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몰린 '유럽의 보루'…"포스트메르켈 시대 시작" 주장도

입력 2017-11-21 10:24
벼랑 몰린 '유럽의 보루'…"포스트메르켈 시대 시작" 주장도

총선참패·정부구성실패 난타에 "퇴진은 없다" 정면승부

극복전망·지지도 만만찮아…마크롱 "獨·유럽 위해 굳세어라" 응원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서방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로 여겨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벼랑에 몰렸다는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날 크리스티안 린트너 자유민주당 대표가 자정까지 이어진 연정 협상장 문을 나서면서 메르켈 총리의 지도력에 물음표가 붙었다고 20일(현지시간) 지적했다.

지난 9월 총선에서 메르켈이 속한 기독민주당이 1949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며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연정마저 실패, 국민을 위해 안정적인 정부를 유지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조차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기민당 내 보수진영 '가치연합'을 이끄는 알렉산더 미치는 "포스트 메르켈 시대가 시작됐다"며 "메르켈 총리는 총선을 낭패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정부 구성에도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자민당 의원 폴커 비싱도 린트너 대표가 연정협상을 중단하기는 했지만 직접적인 책임은 메르켈 총리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비싱은 "메르켈 총리는 그 어느 순간에도 '자메이카 연정'에 공동의 토대를 제공하지 못했다"면서 "그는 실패했다"고 비난 목소리를 높였다.



메르켈 총리는 2015∼2016년 100만명이 넘는 난민을 수용하기로 하면서 '후광'을 잃기 시작했고, 이때를 기점으로 기민·기사당 연합에 대한 지지세도 꺾였다.

결국 총선 이후 내부에서도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일부 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메르켈 총리가 사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 같은 요구는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사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는 이날 저녁 독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에는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해 사임설을 일축했고 재선거가 시행될 경우 다시 후보로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비관적 목소리가 작지 않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메르켈 총리가 또 한 번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결국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무려 12년간 독일을 이끌며 직면한 크고 작은 위기를 돌파한 백전노장이라는 데 대한 신뢰 때문에 나오는 목소리다.

유럽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우파 포퓰리즘의 대두, 스페인 카탈루냐의 분리·독립운동 등으로 정치적 '지진'을 겪고 있는 만큼, 안정을 상징하는 메르켈 총리의 남다른 위상도 그런 목소리에 힘을 보탠다.

독일 슈피겔의 베를린 부지사장은 미국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이번 정국혼란이 그 성격이나 충격을 볼 때 '독일판 브렉시트'나 '독일판 트럼프 당선'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메르켈 총리의 위기는 곧 유럽 또는 세계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우려가 크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독일 제1공영 ARD TV가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 57%가 정부구성 실패를 부정적으로 봤다.

그러나 그 책임을 묻는 말에는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을 지목한 이들이 9%에 불과했다. 연정협상에 참여한 다른 정당인 자민당, 기사당, 녹색당이 비난의 대상이 됐다.

메르켈 총리가 다시 총리직을 맡는 데 대해서도 아직은 58%가 긍정적이라고 답변했다.

해외에서도 지지 목소리가 들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가 겪는 어려움이 양국 협력에 심각한 장애가 될 수 있다며 순망치한을 우려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독일과 유럽을 위해서, 우리의 주요 파트너가 강력하고 안정적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며 이를 통해 우리가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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