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봉황동 유적서 가야 건물지·토기 수백점 출토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조사 성과 공개…"유력자 생활 공간 확인"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문재인 정부가 가야사 복원을 위한 조사·연구를 국정과제로 선정한 상황에서 가야 유적의 발굴 성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전북 동부의 장수 동촌리 고분군에서 6세기 전반께 제작된 마구(馬具·말을 타는 데 쓰는 기구)가 출토된 데 이어 금관가야의 왕궁 추정지인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가야 건물지와 토기가 발굴됐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3월부터 김해 봉황동 유적의 북동쪽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4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대형 건물지 10여 기와 토기 수백 점을 발견했다고 21일 밝혔다.
연구소는 이번 조사에서 지표면을 기준으로 4.5m 아래까지 파고들어 가 시대별 문화층(특정 시대의 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지층)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를 통해 민무늬토기가 있는 원삼국시대(기원전 1세기∼기원후 4세기)부터 가야시대, 통일신라시대, 조선시대의 문화층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가야 문화층에서는 지름 10m를 넘는 타원형 건물지들이 나타났다. 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3호 건물지는 장축 15m, 단축 12m로 추정된다. 둥글게 벽을 두르고 내부에는 기둥을 세운 형태다.
이에 대해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1999년 봉황대 진입로 개설 구간에서 조사된 주거지와 2005년 창원 신방리유적 출토 주거지와 유사하다"며 "그동안 봉황동 유적 일대에서 확인된 생활유적과는 차별화된 공간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봉황동 유적에서는 의례에 쓰인 것으로 짐작되는 화로형 토기, 통형기대(筒形器臺·긴 원통을 세운 그릇받침) 등 다양한 토기 조각들도 나왔다.
화로형 토기는 금관가야의 수장층이 묻힌 것으로 알려진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나온 토기와 문양이 비슷하다. 통형기대는 동그란 무늬가 새겨진 기다란 띠를 붙이고, 몸체의 대각선 방향에 구멍을 뚫은 점이 특징이다.
또 기마인물형토기에 달린 것과 흡사한 각배(角杯·뿔 모양 잔)와 토우도 출토됐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지난해 수레바퀴 모양 토기, 장신구에 이어 올해 대형 건물지와 의례형 토기가 다수 발굴되면서 이곳이 가야 유력자의 생활 공간임이 확인됐다"며 "내년 3월께 발굴조사를 재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해 봉황동 유적은 1899년 발행된 '김해군읍지' 고적(古蹟) 조의 "수로왕궁지는 지금의 (김해)부 내에 있다고 전해지며, 고궁지는 서문 밖 호현리에 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금관가야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지금까지 70여 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돼 주거지, 토성, 접안시설 등이 발견됐으나, 금관가야의 왕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유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금관가야는 기원 전후부터 532년까지 경남 김해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떨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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