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전 뉴욕의 사회개혁을 이끌어낸 탐사보도와 사진
포토저널리즘 선구자 제이컵 리스 '세상의 절반은 어떻게 사는가'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덴마크 출신의 미국 사진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제이컵 A. 리스(1849∼1914)는 탐사보도에 가까운 폭로저널리즘과 포토저널리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130여년 전 미국 뉴욕의 뒷골목 빈민가를 탐사보도한 책 '세상의 절반은 어떻게 사는가'(교유서가 펴냄)에서 당시 뉴욕 인구의 4분의 3이 살았던 공동주택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현실을 고발한다.
당시 뉴욕 맨해튼 동쪽 지구인 이스트사이드에는 여의도(2.9㎢) 면적보다 작은 2.6㎢의 면적에 29만명이 살고 있었다. 여의도에 2014년 기준 3만3천명이 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인구밀도다. 이민자들이 대규모로 몰려오면서 뉴욕의 인구가 급증했고 이민자 대부분은 공동주택으로 흘러들어 갔다.
뉴욕의 공동주택은 제대로 된 집이 아니라 기존 주택의 뒤채에서 출발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집주인은 낡고 허름한 집을 개조해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기 시작했다. 큰 방은 조명이나 환기를 고려하지 않은 채 몇 개의 작은 방으로 분할됐고 지하부터 꼭대기방까지 사람들이 가득 찼다. 책은 한 공동주택을 '남녀노소를 포함한 다섯 가족, 총 20명이 가로 3.6m, 세로 5.79m(약 6.4평)의 단칸방에서 산다. 이 방에는 칸막이나 차양, 의자나 탁자는 없고 달랑 두 개의 침대가 있을 뿐이다'라고 묘사한다.
신문사 경찰 취재기자였던 리스는 공동주택의 주거 환경을 탐사보도의 형태로 전하며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그가 보여주는 현실에서는 하룻밤에 서너 명씩 부잣집의 현관문에서 버려진 아이들이 발견된다. 거리에서 발견된 아이들은 거의 반죽음 상태로 시설에 와 병원으로 옮겨지더라도 사망률이 90%에 육박한다.
남성의 임금은 최저생계비 밑으로 떨어지지 않지만 여성의 임금은 최저한계선이 없어 많은 여성이 어쩔 수 없이 '나쁜 수단'에 의존하게 된다.
사람들은 일상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피난처로 술집을 찾고 음주는 습관이 된다. 부랑아들은 날로 초라해지는 의복과 낮아져 가는 자존감에 맞서다 갱단에 발을 들인다.
체코인 이민자들은 공동주택에서 시가를 만들고, 저가 의류 사업을 하는 유대인 이민자들은 저가에 노동력을 착취한다. 세탁업으로 돈을 모은 중국인들은 아편에 중독되어 간다. 죽어서까지 빈민묘지에는 공간을 아끼기 위해 관이 다닥다닥 3층 높이로 쌓인다
리스의 고발은 무엇보다 사진이 더해지며 극대화됐다. 그는 경찰 기자로 일할 당시 막 도입된 플래시 파우더를 이용해 빈민가의 모습을 생생한 사진으로 포착해 글과 함께 담았다.
글에 사진이 더해지며 책의 반향은 커졌다. 당시 뉴욕의 경찰청장으로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리스의 책에 큰 감명을 받아 뉴욕에서 공동주택 관련 입법을 위해 나섰던 일화가 전해진다.
19세기 말 미국의 현실을 담은 책이 21세기 한국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인 전성원 문화평론가는 해제에서 "이 책은 당대의 지식인이나 사회가 빈민의 삶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시대, 도시 빈민의 문제가 빈민들의 태생적인 성품이나 나태, 무지의 탓이 아니라 이들이 처한 정치·경제·사회적 조건이 빚어낸 결과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활자와 사진이 결합해 사회를 개선하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둔 책이라는 역사적 의의도 있다"면서 "우리는 19세기 말에 펴낸 이 책을 '역사적 원전'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뼈아프게 고발하는 책'으로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원제 How the Other Half Lives. 정탄 옮김. 472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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