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수치 "불법이민이 테러 퍼뜨려"…로힝야족 겨냥?

입력 2017-11-20 17:49
아웅산수치 "불법이민이 테러 퍼뜨려"…로힝야족 겨냥?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로힝야족을 상대로 한 '인종청소'를 묵인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미얀마의 실권자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이 자국에서 불법 이민자 취급을 받아온 로힝야족을 겨냥한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20일 AP통신에 따르면 수치 자문역은 이날 수도 네피도에서 개막한 제13차 아셈(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 외교장관회의 연설에서 "지금 전 세계는 충돌과 갈등이 촉발한 위협과 비상사태로 새로운 불안정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수치 자문역은 특히 "불법 이민이 테러와 폭력적 극단주의, 사회적 부조화와 핵전쟁 위협을 확산시킨다"며 "분쟁은 사회로부터 평화를 빼앗아가고, 저개발과 빈곤을 남기며 사람들과 국가들을 분리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연설에서 수치 자문역은 로힝야족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온 불법 이민자로 취급하고 테러세력으로 비판하는 미얀마 내 다수의 여론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고 통신은 해석했다.

방글라데시와 인접한 미얀마 라카인주(州)에서는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주류인 아라칸인(불교도)과 영국이 쌀농사에 투입할 값싼 노동력 확보를 위해 유입시킨 소수인 벵갈리(이슬람교) 간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2차 대전 당시 영국령 미얀마를 침공한 일본이 지배세력 공백을 틈타 이슬람교도를 무자비하게 탄압했고, 이후 영국이 반일 감정을 가진 로힝야족 의용군을 무장시켜 영토 재탈환에 앞장을 세우면서 양측은 본격적인 유혈충돌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영국군이 무장시킨 로힝야족 의용군은 일본군과 싸우는 대신 일본군에 협조적이었던 불교도를 학살하고 불교 사원과 불탑을 파괴했다. 이후에도 두 종교집단 간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1982년 쿠데타로 집권한 네윈의 군부는 '국적법'을 제정해 8대 민족과 135개 소수민족에 국적을 부여하면서, 로힝야족을 국적 부여 대상에서 제외했다.

2012년에는 로힝야족의 불교도 여성 집단성폭행 사건으로 촉발된 유혈충돌로 200여 명이 사망하는 등 주류인 불교도와 소수인 이슬람교도 간 갈등이 더욱 심화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0월 로힝야족 반군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의 전신인 '하라카 알-야킨'(Harakah al-Yaqin, 믿음의 운동)이 경찰 초소를 습격, 9명의 경찰관이 살해되자 미얀마군은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토벌 작전을 벌였다.

또 미얀마군은 지난 8월 ARSA가 대미얀마 항전을 선포하고 재차 경찰 초소를 습격하자, 이 단체를 테러세력으로 지목하고 대대적인 소탕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60만 명이 넘는 로힝야족 난민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난민들은 미얀마군이 토벌 작전을 빌미로 살인, 방화, 성폭행 등을 일삼았다고 주장했고, 유엔과 국제사회는 이를 '인종청소의 교과서적 사례'로 규정하고 미얀마군에 대한 제재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미얀마 정부와 군은 이런 주장이 조작된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조사도 거부하고 있다.

특히 아웅산 수치는 난민과 유엔 등의 주장이 조작된 정보에 의한 가짜 뉴스라고 비판했고, 지난 9월 국정연설에서는 라카인주 이슬람교도 중 절반은 폭력사태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해 논란을 키웠다.

한편, 이날 회의에 앞서 유럽연합(EU)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페데리카 모게리니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주도한 라카인주 위원회가 라카인주 분쟁 해소를 위해 제시한 권고안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치는 지난해 라카인주의 종교 분쟁에 관한 장기적 해법을 찾기 위해 아난 전 사무총장이 주도하는 자문위원회를 구성했고, 위원회는 로힝야족에 대한 시민권 부여, 기본권 보장, 경제 사회적 혁신을 통한 빈곤문제 해결 등을 권고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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