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활비 블랙홀' 정국…여야 '서로 까보자' 공방 격화

입력 2017-11-20 17:00
'특활비 블랙홀' 정국…여야 '서로 까보자' 공방 격화

與 "홍준표 특활비 진상규명" vs 野 "검찰 특활비 청문회·국조"

野 "靑 하명수사 정치검찰" 공세…당정청 "공수처 꼭 설치" 재천명

(서울=연합뉴스) 정윤섭 임형섭 기자 = 정치권이 '특수활동비(특활비) 블랙홀' 정국으로 빠져들 조짐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특활비 상납을 둘러싼 검찰 수사가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여의도 정가가 특활비 정국의 소용돌이로 휘말리는 형국이다.

특활비 정국은 박근혜 정부 국정원에서 예산과 인사를 담당했던 이헌수 전 기조실장의 입에서 시작됐다. 이 전 기조실장이 특활비 40여억 원을 청와대에 상납했다고 진술하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검찰에 불려간 데 이어 국정원이 현직 여야 의원들에게도 특활비를 상납했다는 설과 함께 현역의원 5명의 실명이 담긴 출처 불명의 리스트가 나돌면서 정치권은 바짝 얼어붙었다.





국정원 특활비 수사의 파장은 자유한국당을 먼저 덮쳤다.

친박(친박근혜) 핵심인 한국당 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 국정원 특활비 1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친박 의원 사이에서는 '이러다 친박은 소멸할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수세에 몰린 한국당은 "정치 검찰이 청와대 하명수사에 따라 정치보복에 나선 것"이라고 비판하는 동시에 "검찰이 특활비를 법무부에 상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맞불을 놓았다.

이는 법무부와 검찰을 동시에 겨냥함으로써 여권의 적폐청산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겠다는 포석이다.

홍준표 대표는 20일 베트남 방문을 위한 출국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의 특활비가 매년 법무부에 건네졌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검찰 특활비도 국정원 특활비와 다를 바 없다"며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도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상납사건을 처벌하려면 검찰로부터 매년 100억여 원의 특활비를 상납받았다는 법무부도 같이 처벌하는 것이 형평에 맞는 것이 아닌가"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당은 내친김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차원의 청문회를 추진하겠다며 권성동 법사위원장 주재의 여야 간사회의를 열었고, 청문회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 국정조사를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법사위 논의가 원만히 이뤄지지 못한다면 국정조사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의 검찰 특활비 의혹 제기를 정치공세로 규정하고, 수용 불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금태섭 의원은 "법무부가 검찰로부터 상납을 받았다든지, 개인적으로 유용한 부분이 없는데 이를 문제삼으면 정치공방으로 빠질 수 있다"며 "지금 검찰 수사에 반대 여론을 조성하려는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성완종 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특수활동비 유용 논란을 정조준하면서 검찰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박완주 수석대변인은 홍 대표가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특활비 유용논란을 해명한 것을 겨냥해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며 "특활비 의혹이 불거지자, 아내에게 준 돈은 특활비가 아니라 본인 급여라고 말을 바꾼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급기야 홍 대표의 국회 특활비 해명은 당시 원내협상 파트너였던 원혜영 의원과 홍 대표 간 진실공방으로 번졌다.

원 의원은 '여당 원내대표 및 국회 운영위원장 재직 시 야당 원내대표에 국회운영비를 보조했다'는 홍 대표의 특활비 용처 발언과 관련, "제1야당 원내대표였던 저는 어떤 명목으로도 홍준표 당시 운영위원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일축했다.

민주당이 이처럼 한국당을 대상으로 맹공을 펼쳤지만, 검찰발(發) 사정 칼바람에 여권도 내심 불편함을 느끼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된다.

전병헌 전 정무수석이 한국e스포츠협회를 통해 롯데홈쇼핑으로부터 수억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 사정 정국에 착잡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정원 특활비 논란과 관련해 여야 의원에게 돈이 건네졌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을 두고 국정원에 항의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는 해석이 있다.

정 의장 측은 "정 의장이 국정원에 직접 항의를 하면서, 결과적으로 국회가 욕을 듣게 생겼으니,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문도 했다"고 말했다.

때마침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이날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관철하겠다고 밝혔다. 여권의 '정치검찰·정치보복' 공세를 차단하고 국정과제인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확인한 셈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검찰 수사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여권이 검찰에 '공수처'라는 견제구를 던졌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jamin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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