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이란공동전선' 이스라엘 제안에 고민깊은 사우디…적과 동침?

입력 2017-11-20 04:51
'對이란공동전선' 이스라엘 제안에 고민깊은 사우디…적과 동침?

사우디, 아랍의 맹주 유지·이란의 시아파벨트 확장저지 '이중고'

트럼프 유대인사위 쿠슈너 '키맨' 등장…'악마의 거래' 성사시킬까

사우디, 이스라엘과 연대시 아랍 이슬람권 지도국 위치 손상될 수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스라엘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잇따라 협력을 타진하고 있다.

아랍 이슬람권이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는 이스라엘과 협력한다는 것은 '배신행위'나 다름없지만 이란의 위협이라는 공적 앞에 대타협을 통한 '적과의 동침' 가능성이 솔솔 나오는 분위기다.

이미 중동 언론에서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물밑에서 '대이란 공동전선'을 고리로 얘기를 주고받는다는 추측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인 가디 아이젠코트 중장은 16일(현지시간) 사우디 매체 엘라프와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외교관계는 없지만, 이란에 대적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동맹'을 통해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젠코트 중장은 사우디와 이란 관련 정보를 기꺼이 공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스라엘의 고위 인사가 사우디 매체와 인터뷰한 것은 2005년 이후 처음이다.

이어 이스라엘은 유엔 인권이사회(UNHRC)에서 지난주 사우디의 시리아 내전 해법을 지지한다고 처음 밝혔다.

시리아는 이란이 지원하는 정부군이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시리아에서 이란에 밀려 입지가 좁아진 사우디의 궁박한 사정을 이스라엘이 헤아려 측면 지원에 나선 셈이다.

레바논에서도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이해관계는 맞아떨어진다. 친이란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양측 모두 적대하기 때문이다.

레바논에서도 어울리지 않는 이 두 정부를 동맹으로 묶을 수 있는 끈은 '공적' 이란이다.

이스라엘은 더 나아가 이슬람과 유대교의 종교적 화합도 언급했다.

아유브 카라 이스라엘 통신부 장관은 13일 자신의 트위터에 사우디의 종교 지도자 카비르 무프티 압둘아지즈 알셰이크를 이스라엘로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중동의 아랍 이슬람권이 이스라엘과 손잡는다는 것은 금기 중 금기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4차례에 걸친 아랍권과 이스라엘이 중동전쟁을 벌여 아랍권이 전패한 구원이 있는 데다가 같은 아랍·이슬람계인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탄압이 뒤섞인 결과다.

이슬람권은 '예루살렘' 대신' 알쿠드스'라는 명칭을 쓰고, 지도에 이스라엘을 표기하지 않는다. 이스라엘과 적대관계가 높을수록 대중의 지지가 높고, 이슬람 국가로서 정체성이 선명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란과 사우디가 비록 경쟁국이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입장은 같다.

이런 역학 구도를 고려할 때 사우디가 이슬람권의 반대를 넘어 이스라엘과 손을 잡으려면 팔레스타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직접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을 무시하고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접근한다면 사우디는 이란을 대적하다 자칫 자신의 지위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팔레스타인 분쟁과 이란 적대를 묶어내는 미국의 '큰 그림'이 그려진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해석이다.

미국이 팔레스타인을 압박, 이스라엘과 평화 합의를 끌어내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손잡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뒤 이란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펼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 중심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사위인 유대인 출신 재러드 쿠슈너가 '키 맨'으로 등장한다.

쿠슈너는 8월 사우디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이집트를 방문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1일 "쿠슈너가 이스라엘 민항기의 아랍권 취항, 사업 비자 발급과 사우디, 이집트, 요르단, 아랍에미리트(UAE)와 이스라엘의 통신 개통 등을 사우디에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수반 마무드 아바스가 5월 백악관을 방문하고 지난주 사우디를 찾았는데 여기에서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모종의 '액션 플랜'을 전달받았다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우디와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이집트가 10년 만에 가자지구와 경계를 개방한 것도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과 대화에 나서라는 당근을 제시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그러면서 미국은 18일 팔레스타인자치정부가 이스라엘과 대화하지 않으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워싱턴 사무소를 폐쇄하겠다면서 '채찍'도 들었다.

아바스 수반이 호락호락 미국과 사우디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우디가 중동 정세 불안을 무릅쓰고 이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것도 이스라엘과 전략적 협력을 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을 쌓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나온다.



사우디 왕실은 아직 이스라엘의 적극적인 대이란 공동전선 제안에 답이 없다.

일단 이스라엘과 협력은 없다고 공식적으로 선을 그은 상황이다.

이스라엘의 공공연한 연대 제의는 사우디를 매우 난처한 지점에 떨어뜨렸다.

사우디-이스라엘 공동전선은 이란에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대가로 이교도에 탄압받는 무슬림의 상징인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적어도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 이전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회복하는 수준의 양보를 이스라엘에서 얻어내야 하는 데 이스라엘이 이에 합의할 리 만무하다. 이스라엘은 오히려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을 더 늘리겠다고 나오는 판이다.

혹을 떼려다가 혹을 붙이는 격으로 회복해야 할 이슬람의 제3의 성지 예루살렘에 대한 이스라엘의 통제권을 사실상 인정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이는 곧 사우디가 이슬람 종주국이자 아랍권의 맏형으로서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경쟁국 이란이 '팔레스타인과 무슬림의 배신자'라고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주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큰 타격이다.

사우디로서는 그렇다고 이스라엘과 대타협 시나리오를 외면할 수만은 없다.

현재 중동 정세를 보면 사우디 혼자서 이란의 시아파 벨트 확장을 저지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예멘 내전도 3년 가까이 해결하지 못한 데서 볼 수 있듯 사우디의 장악력은 압도적이지 못하다. 설상가상으로 3년 간의 저유가로 사우디의 '오일 파워'는 힘이 빠졌다.

이란과 전면전을 선포하지 않는 한 사우디가 이란과의 패권경쟁에서 역전하려면 이슬람권의 반발을 안고 중동의 군사·경제 강국이자 미국의 대리자인 이스라엘과 '악마의 거래'를 해야 한다는 현실적 유혹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hsk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