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프랑스영화? 가볍게 접근하는 게 내 영화철학"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 "'옥자', 비교대상 없을 만큼 독특해"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제 작품 스타일과 많이 다르지만 세련됐고 미적으로 뛰어나요. 특히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영화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해요. 사실과 환상 사이 어딘가에 있는 그 느낌 말이죠."
프랑스 감독 세드릭 클라피쉬의 한국영화에 대한 평가다. 최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클라피쉬는 봉준호·박찬욱·김기덕·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2017 프렌치 시네마 투어' 참석차 처음으로 방한한 그는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때문에 오래 전부터 한국을 방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클라피쉬는 미개봉 프랑스 영화 10편을 상영하는 이번 프렌치 시네마 투어에 최신작 '백 투 버건디'를 들고 왔다. 부르고뉴 지방의 와인 농장을 배경으로 세 남매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영화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 오랜만에 한데 모인 남매는 아버지가 남긴 농장을 어떻게 운영할지를 두고 대립한다. 그러다가 묘안을 찾아내고 한동안 금이 갔던 우애도 되찾는다. 세 남매는 힘들지만 유기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한다.
"스물다섯에서 서른 살까지 젊은이들이 현재의 프랑스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예요. 환경오염에 관한 문제도 얘기하고 싶었어요. 환경문제를 인식하면서 와인 만드는 방법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를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스크린에는 프랑스 농촌의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진다. 계절의 변화를 담기 위해 1년에 걸쳐 촬영했다. 포도를 재배하고 수확한 뒤 와인을 숙성시키는 시간 속에서 남매는 조금씩 성장한다. 와인은 인간과 자연의 결합을 다루는 최고의 소재라고 그는 말했다. "와인은 자연이 준 선물이자 인간의 개입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죠."
클라피쉬는 그동안 농촌보다 도시를 배경으로 즐겨 삼았다. 도시는 개인과 집단 사이의 문제를 말하기 좋은 공간이다. '스페니쉬 아파트먼트'(2002)에선 유럽 여러 나라 대학생들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모였고 '사랑을 부르는, 파리'(2008)는 파리 시내 곳곳을 비췄다.
"'백 투 버건디'가 열두 번째 영화인데, 돌이켜보니 이전 영화들을 모두 도시에서 찍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번엔 전원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한 거죠."
클라피쉬는 인물들의 일상을 비추면서 진지한 주제를 무겁지 않게 전달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영화엔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정도의 잔잔한 코미디가 깔린다. 그는 "주제를 심각하게 얘기하면 관객에게 지루하고 지겨운 느낌을 준다"며 "심각하고 진지한 주제에 가볍게 접근할수록 관객이 더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게 나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사실주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에 천착하는 게 프랑스 영화의 매력"이라는 그는 청년 시절 미국 뉴욕대에서 영화를 배웠다.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는 미국 유학 시절 경험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이다. "미국에서 영화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익혔지만, 미국식 시스템으로 영화를 제작하지는 않아요. 미국에 가서 비로소 비로소 프랑스의 정체성을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
클라피쉬는 연예계 뒷얘기를 담은 TV드라마와 열세 번째 장편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제 영화들보다 덜 사실적이고, 더 본격적인 코미디입니다. 사람들이 깔깔거리고 웃어야 진짜 코미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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