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을게요" 미수습자 마지막 길 배웅한 안산

입력 2017-11-20 08:01
수정 2017-11-20 09:41
"잊지 않을게요" 미수습자 마지막 길 배웅한 안산

세월호 참사 이후 지역사회에 끼친 파장 막대…갈등 일기도

유가족 아픔 보듬고 일상으로의 복귀 준비

(안산=연합뉴스) 이복한 강영훈 권준우 기자 = 세월호 참사가 경기 안산 지역에 끼친 파장은 막대했다.

단원고가 위치한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등지에서는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아이를 잃었다는 탄식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희생자가 많았다.

세월호 가족과 함께 눈물 흘린 안산 시민들은 3년 넘도록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고통받다 장례식을 위해 목포신항을 떠나 진잔 18일 안산으로 올라온 미수습자 가족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며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 멈춰버린 단원고의 시간…"잊지 않겠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단원고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멈췄다.

미수습자를 포함한 희생 학생이 250명에 달하다 보니 학생과 교사들은 위축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선·후배와 제자를 잃은 슬픔 탓에 대화하는 것부터 끼니를 챙겨 먹는 것까지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단원고 소속이라는 자체만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특히 대학 특례 입학과 관련해서는 각종 괴소문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학생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내부적으로도 시련의 시기를 맞기도 했다.

단원고 구성원들은 참사 당시 2학년이던 학생들이 사용하던 10개의 교실, 즉 '기억교실' 존치 문제를 놓고 크게 갈등했다.

단원고 측이 기억교실을 보존한 상태에서 신입생을 받으려다 보니 교실 부족에 봉착했고, 이에 재학생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이 일었던 것이다.

이 갈등은 지난해 5월 세월호 유가족과 재학생 학부모들이 안산교육지원청으로의 기억교실 임시이전에 가까스로 합의를 이뤄내면서 봉합됐다. 아울러 희생 학생 전원에 대한 제적처리 문제도 학적복원을 완료한 끝에 해결될 수 있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동급생들이 지난해 졸업하면서 단원고도 서서히 학교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단원고 관계자는 "충격과 슬픔이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지만, 재학생들의 밝은 모습에 학교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라면서도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조형물을 계획대로 교정 안에 잘 조성해 희생 학생과 교사들을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 크게 위축됐던 안산, 이제 조금씩 '기지개'

세월호 참사의 파장은 단원고를 넘어 안산 전체로 번졌다.

참사 초기 단원고가 위치한 고잔동을 중심으로 지역 전체가 활력을 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민들에게 희생된 아이들은 동네를 오가며 인사를 건넨 적이 있는 예의 바른 학생이었으며, 같은 초·중학교를 졸업한 친구이자 선·후배였던 터다.

당시 전국적으로 세월호 참사 추모 분위기에 맞춰 대규모 행사 등을 취소하거나 무기한 연기하는 현상도 빚어졌다.

타 지역의 경우 수개월에 걸쳐 차츰차츰 슬픔에서 회복하는 모습이 나타난 것과 달리, 안산은 치유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안산 중심지인 중앙동 일대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간판·홍보물 대신 세월호 참사 관련 현수막과 리본이 점점 늘어나며 도로와 인도 주변을 온통 노랗게 물들였다

참사 초반에는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주민 불만이 폭력적인 양상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2014년 8월 안산지역 상인 3명이 시내 곳곳에 내걸린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현수막 수십 개를 몰래 떼 버렸다가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지역 전체가 우울감에 빠진 상황에서 가게를 찾는 손님이 줄자 이런 일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세월호 현수막 훼손 사건은 지역 주민들에 의해 이후에도 잇따라 발생했다.

2014년 9월 말 안산 문화광장에 걸린 세월호 현수막 철거를 요구하는 상인들의 집회가 예고돼 긴장감이 높아진 적이 있었고, 이듬해 10월 화랑유원지 일부 상인은 영업피해를 배상하라며 안산시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법정 다툼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3년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안산 지역사회에 곳곳에 났던 생채기는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다.

안산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 분향소에서 가까운 식당 몇 곳에서는 전기·가스비도 내지 못할 정도로 어렵다고 하소연했고, 그로 인한 갈등도 있었다"며 "다만 상인들도 지인의 자녀가 희생되는 등 아픔을 함께 겪고 아파했던 것이 사실이다. 향후 세월호 가족들이 몸과 마음을 잘 추슬렀으면 한다"고 말했다.



◇ "슬픔도 기쁨도 함께해요"…아픔 보듬는 안산

미수습자 가족들이 세월호 참사 1천312일 만에 장례를 치르기 위해 안산으로 올라온 지난 18일 찾은 안산은 여전히 노란색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시민들은 분향소를 찾아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의 영면을 기도하며 눈물 흘리기도 하지만, 일상까지 파고든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참사 초기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다.

엄숙한 분위기가 가득했던 화랑유원지는 이제 음료를 들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부터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나눠 먹는 사람들까지 생겨 추모와 휴식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 후 3년 넘도록 운영이 중지됐던 안산 화랑오토캠핑장은 지난 9월부터 입장객을 다시 받기 시작했고, 같은 달 말 화랑유원지에서는 '2017 경기정원문화박람회'가 열려 20여만 명이 찾았다.



행사 때는 푸드트럭이 여럿 설치됐고, 세월호 유족들은 부스를 차려놓고 팔찌 등을 팔며 시민들과 소통하기도 했다.

주민 김모(28·여)씨는 "처음에는 안산 전체가 장례식장인 것처럼 슬펐고, 희생자와 연관이 없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을 정도여서 말하기도 조심스러웠다"며 "시간이 흐르고 아픔이 일상화되면서 조금은 적응이 된 것 같다. 다만 절대로 세월호를 잊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안산지역 대학생 최모(21·여)씨도 "안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해 참사 당시 분위기를 잘 알고 있다"며 "세월호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하되 일상에도 충실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날 안산 제일장례식장에 마련된 미수습자 단원고 양승진 교사, 박영인·남현철 군의 합동분향소에는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시민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조문 온 시민들은 깊은 바닷속에 잠들 줄만 알았던 세월호가 인양되는 등 진실 규명에 한 발짝씩 다가서는 모습을 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

안산시 세월호 사고수습지원단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로 피해를 본 가족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기억하려는 시민이 여전히 많다"며 "상처를 입은 모든 이의 마음이 치유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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