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앨 수도 없고'…野의원들, 휴대전화 2개 쓰는 사정은
탄핵정국서 시작된 '문자 폭탄' 회피수단…'울며 겨자 먹기'
바른정당 출신 한국당 복당파 의원들도 문자 폭탄에 골머리
(서울=연합뉴스) 배영경 기자 = 20대 국회 들어 야당의원 중에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휴대전화를 2개씩 사용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구체적인 이유는 의원 개인마다 다르지만, 휴대전화를 복수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타고 올라가면 결국 지난 겨울의 탄핵 정국과 맥이 닿는다.
지난해 연말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을 앞두고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휴대전화 번호가 대거 온라인에 유출되면서 시작된 '문자폭탄' 사태가 지금까지도 주요 국면마다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박 전 대통령 출당 과정 등에서 '문자테러'에 시달리다 못한 나머지 새로운 휴대전화를 마련했지만 원래 사용했던 휴대전화도 살려두었다. 기존의 번호로 전화를 걸면 해당 의원의 목소리가 삽입된 컬러링이 여전히 흘러나온다.
최근 바른정당을 탈당해 한국당에 복당한 의원들도 바른정당 시절의 지지자들과 복당에 반대하는 한국당 지지자 등으로부터의 문자 폭탄을 견디다 못해 새로운 휴대전화를 개통했으나 이전에 사용하던 휴대전화도 그대로 유지 중이다.
탄핵 국면 이후 문자 폭탄에 시달렸던 한 친박(친박근혜)계 의원은 '콜앱'이라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자신에게 항의 문자를 보낸 이들에게 그들의 실명을 알아맞히는 답장을 보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바른정당에 잔류한 한 의원도 일명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박 전 대통령 지지세력으로부터의 문자 세례를 견디지 못해 새로운 휴대전화를 개통했다고 한다.
의정 활동과 지역구 관리를 해 오면서 오랫동안 사용해 온 전화번호를 변경하는 것이 의원들에게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때문에 문자테러 등을 피하고자 새로운 휴대전화를 마련하더라도 기존의 연락처는 그대로 살려두는 의원이 적지 않다고 한다.
물론 자신에 대한 문자 폭탄을 기존 휴대전화로 유도하기 위해 원래 연락처를 살려놓는 경우가 상당수다.
야당 의원실 관계자들은 "얼마 전 의원이 원래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확인해보니 문자메시지가 4천 통 넘게 쌓여있었다"며 "국정감사나 TV 프로그램에서 여권을 세게 비판하는 말이라도 하면 밤이고 낮이고 전화와 문자가 쏟아진다"고 말했다.
한국당 박성중 홍보본부장은 1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예전 한창 극에 달했을 때보다 문자 폭탄이 줄어들긴 했다"면서도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이른바 친위대가 활동하면서 문자 폭탄은 여전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문자 폭탄뿐만 아니라 포털사이트에서의 여론 조작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까지 계속될 수 있는 만큼 당 차원에서 면밀히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ykb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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