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보내고 가슴에 묻고…세월호 '1천315일의 눈물'

입력 2017-11-20 08:01
수정 2019-01-31 17:07
하늘로 보내고 가슴에 묻고…세월호 '1천315일의 눈물'

사망 304명 장례 마무리…살신성인 등 안타까운 사연 남아

미수습자 5명 유해 결국 못 찾아…가족들 "가슴에 묻고 떠난다"

(안산=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세월호가 침몰한 지 1천315일째인 20일 끝내 뭍으로 돌아오지 못한 5명은 남은 가족의 가슴에 묻혀 영면에 들어갔다.



이날 미수습자 장례식이 치러짐에 따라 앞서 수습된 299명 등 총 304명의 희생자에 대한 장례절차가 모두 마무리됐다.

◇ 참사 당일 첫 사망자 수습…올해 4명 유해 찾아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세월호는 갑자기 오른쪽으로 45도 급하게 항로를 변경하고선 기울기 시작했다. 2시간여가 지난 오전 11시 18분에는 선수 일부만 남기고 사실상 침몰했다.

세월호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등 모두 476명을 태우고 전날 인천항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중이었다.

사고 발생 2시간 30여 분이 지났을 무렵 승무원 박지영(22·여)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박 씨는 세월호 참사 첫 사망자로 기록됐다.

같은 해 10월 29일 참사 103일 만에 시신 1구가 인양됐다. 이날까지 모두 295명의 시신이 수습됐다.

이후 올해 4월 18일 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를 끌어올려 목포 신항에 거치하고 선내 수색에 돌입하기까지 시신 수습작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참사 1천98일 만에 시작된 선내 수색에서는 4명의 유해가 추가로 수습됐다.



그 사이 정부는 구조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청을 해체했고 피해가 이토록 커진 데 대한 진상 규명을 약속했다.

이준석(63) 선장은 재판에 넘겨져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았다. 세월호 침몰 당시 "자리에 남아있으라"라는 선내방송을 하도록 하고 자신은 가라앉는 배에서 먼저 빠져나온 데 대한 죗값이었다.

◇ 승객·제자 탈출 돕다가…안타까운 사연들

가장 먼저 숨진 채 발견된 승무원 박 씨는 아버지를 암으로 여의고 어머니와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고자 다니던 대학에 휴학계를 내고 세월호에 탔다.

그는 구명조끼를 학생에게 양보하고 승객들의 대피를 돕다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양대홍(45) 사무장 역시 박 씨와 함께 마지막 순간까지 승객들을 구조했다.

박육근(51) 단원고 2학년 부장교사는 급박한 상황에서 "죽더라도 학생들을 살리고 내가 먼저 죽겠다"라고 외치고 학생들을 탈출시키다가 자신은 힘이 빠져 탈출에 실패했다.

전수영(25·여) 교사는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야 한다"며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급히 끊고 비교적 탈출이 쉬웠던 5층 교사 숙소에서 학생 숙소가 있던 3층으로 내려갔다.

김응현(44), 고창석(40), 최혜정(24·여) 씨 등 다른 숨진 교사들도 5층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대신 3층으로 내려가 학생들의 안전을 살폈다.

정차웅(17) 군은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고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정군의 부모는 아들을 떠나보내며 "국민의 세금으로 아들 장례를 치르는데 비싼 것을 쓸 수 없다"며 최하등급 수의와 관을 맞췄다.



조요셉(7)군은 간신히 구조됐지만, 함께 세월호에 탔던 부모와 형을, 다른 승객의 도움으로 구조된 한 5살 여자아이는 부모와 두 살 위 오빠를 모두 잃었다.

황지현 양은 자신의 18번째 생일에 시신이 수습돼 주변을 안타깝게 했고 40대 여성은 단원고 학생이던 맏딸과 유년시절 스승을 동시에 잃는 아픔을 겪었다.

◇ 그토록 기다렸지만…미수습자 가족 "가슴에 묻고 떠난다"

박영인 군의 부모는 참사 당시 다른 학생의 옷에서 아들의 신분증이 나와 아들을 찾은 줄 알았다. 박 군은 그러나 남현철 군,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父子)와 함께 결국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들 미수습자의 가족은 팽목항에서 3번의 겨울을 지내고 올해 3월 22일, 세월호 시험 인양을 지켜보기 위해 어업지도선에 몸을 싣고 사고 해역으로 향했다.

가족들은 3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망망대해 위에서 나흘간 세월호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을 지켜봤다.



기다림은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신항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계속됐다. 시신 수습작업이 재개된 뒤 유해 수습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정신없이 현장에 뛰어갔지만 허탈하게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인양 이후 수습작업에서 유해가 발견된 조은화·허다윤양과 고창석 교사, 이영숙 씨의 가족들도 지난 9월부터 목포신항을 떠났고 박 군 등의 가족은 떠나는 사람들을 눈물로 배웅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결국 지난 18일 3년 넘게 이어진 기다림의 시간을 정리했다.

이들은 목포신항을 떠나며 "뼈 한 조각이라도 따뜻한 곳으로 보내주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선체 수색이 마무리되어가고 있는 지금 비통하고 힘들지만,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자원봉사자들과 헌신적으로 도와준 진도 군민·어민, 목숨을 걸고 수색에 앞장서준 잠수사들, 수색 현장 관계자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며 "함께 아파해주신 국민의 마음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고 덧붙였다.

zorb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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