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근의 병영톡톡] JSA서 벌어진 영화같은 사건들

입력 2017-11-18 06:00
[김귀근의 병영톡톡] JSA서 벌어진 영화같은 사건들

JSA경비대 북한군과 실제 접촉한 일도 있어…북한군, 밤 줍다 MDL 넘기도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북한 군인 1명이 지난 13일 북한군 추격조의 40여 발의 총격에도 목숨을 걸고 귀순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영화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Joint Security Area)'의 줄거리는 비무장 지대 순찰 중에 지뢰를 밟아 위기에 처한 남한의 이수혁 병장(이병헌)이 뜻밖에 북한군의 오경필 중사(송강호)와 정우진 전사(신하균)에 의해 구조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를 계기로 세 사람과 이 병장의 동료 남성식 일병(김태우)은 절친한 사이로 지낸다. 군사분계선(MDL)을 경계로 말을 주고받는 수준이 아니라 남쪽 병사가 수시로 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초소로 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총격이 벌어져 이 병장과 남 일병이 북한군 2명을 본능적으로 살해하고 가까스로 복귀한다는 내용이다.

판문점 MDL 위에 세워진 중립국감독위·군사정전위 회의장 건물을 축으로 하는 반경 400m의 원형지대인 JSA에서는 실제 영화와 같은 사건들이 벌어졌고, 해프닝도 많았다.

1976년까지만 해도 MDL 표식이 없었고 북측, 유엔사측 초소가 남쪽 또는 북쪽을 가리지 않고 설치되어 있었다. 양측 경비병들은 JSA를 자유롭게 통행했다. 그러나 1976년 8월 18일 도끼만행사건 이후 북측, 유엔사측 초소가 남북으로 엄격히 갈라졌고 폭 50㎝, 높이 5㎝의 시멘트 구조물로 표시된 MDL을 경계로 분할 경비를 서게 됐다.





1998년 말에는 JSA 경비병들이 북한군과 수시로 접촉하며 각종 선물을 건네받은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그해 2월 JSA를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변용관 상위(당시 계급)의 진술 등을 통해 접촉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이듬해 당시 천용택 국방장관이 국방위에 출석해 이 사건과 관련해 "JSA 경비대대 소속 한국군 병사 25명이 호기심으로 북한군과 접촉해 대화를 나누고 물품을 수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물품을 받은 사병은 16명에 달했다. 김일성 배지, 술과 담배, 인삼, 달력, 편지엽서, 시계, 금반지 등이 물품 목록이었다. 그야말로 영화 같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 사건 이듬해 영화 JSA가 나왔다.

북한군이 JSA내 MDL을 넘은 것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다.

2001년 가을에는 북한군 하사 1명이 알밤을 줍다가 MDL을 넘었다. JSA MDL 남측 평화의 집에서 서북쪽으로 150m가량 위치에 있는 밤나무는 MDL 선상에서 자라 가지가 남북 양측으로 뻗어있으나 하필 남측 가지에 밤알이 굵고 비교적 많이 열린다고 한다.

당시 북한군 하사는 남측 지역에 떨어진 밤을 줍기 위해 3∼5초간 잽싸게 MDL을 1∼2m가량 넘었는데 이 장면이 유엔사 측에서 설치해 놓은 카메라에 포착됐다.

1989년에는 '조선군사정전위 중국인민지원군' 소속 중국군 소령이 부인과 JSA를 통해 망명했다. 중국군이 판문점을 거쳐 탈출한 첫 사례가 됐다.

이에 앞서 1984년 1월에는 평양주재 소련대사관 수습보조원 바실리 마투조크씨, 1981년 10월에는 중립국 감시위원회 소속 체코인 로버트 오자크 일병이 JSA내 MDL을 넘어왔다. 이들은 탈출 후 미국으로부터 정치적 망명이 허용돼 도미했다.

또 1984년 11월에는 옛 소련인 관광안내원 바실리 야코볼리비치 씨가 JSA를 통해 탈출했다. 북한군은 이를 저지하고자 JSA내 MDL을 넘어와 총격전을 벌였다. 한국군 1명이 전사하고 미군 1명이 부상했으며 북한 경비병도 3명이 죽고 1명이 부상했다. 이 사건은 북한군이 JSA내 MDL을 넘어와 총격을 가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1959년 1월에는 옛 소련의 당기관지 프라우다의 평양특파원 이동준 씨가 군정위 본회의 취재를 나왔다가 유엔측 사무실로 넘어와 귀순했다. 1967년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부사장이었던 이수근도 위장 귀순했다.

판문점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는 1998년 6월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떼 1천여 마리를 트럭 50여 대에 싣고 북한으로 향한 일이다. 이는 비무장지대의 긴장된 역사를 화해와 협력으로 반전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되면서 한민족은 물론 세계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three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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