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역 자처하던 류지혁, 일본 간담 서늘하게 한 2루타
8회 말 대수비로 투입…10회 승부치기에서 펜스 직격 2루타
(도쿄=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전 마무리캠프 합류할 마음의 준비 하고 있어야죠."
류지혁(23·두산 베어스)은 16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일본전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번 대표팀 내야에는 주 포지션이 유격수인 선수가 4명이나 된다.
류지혁을 포함해 하주석(23·한화 이글스), 정현(23·kt wiz), 김하성(22·넥센 히어로즈) 모두 유격수가 자기에게 맞는 옷이다.
보통 유격수는 내야 나머지 포지션까지 소화할 수 있다.
그래서 대표팀은 일본전에서 김하성을 유격수로 세우고 정현을 3루수, 하주석을 1루수로 뒀다.
류지혁은 4명의 유격수 중 유일하게 선발 명단에서 빠졌다.
그는 "벤치에서 계속 응원하겠다"면서 "사실 이번 대회가 끝나면 귀국하는 게 아니라 곧바로 (소속팀 두산의) 미야자키 마무리캠프에 가야 한다. 다른 동료들이 잘해줄 거라 믿는다"고 했다.
류지혁이 선발 명단에서 빠진 건 대표팀에 왼손 타자가 너무 많아서다.
선 감독은 "류지혁을 선발 3루수로 쓰면 선발 라인업 9명 중 7명이 왼손이다. 그래서 (오른손 타자) 정현을 3루에 넣었다"고 밝혔다.
대표팀의 '히든카드' 류지혁은 8회 말 3루수로 투입돼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8회 초 정현이 볼넷을 골라 나간 뒤 대주자 나경민과 교체됐고, 빈 3루수 자리에 류지혁이 투입된 것이다.
팀이 4-3으로 앞선 상황이라 2이닝 동안 수비만 소화하다 경기를 마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9회 말 대표팀은 마무리 김윤동이 제구 난조를 겪어 4-4 동점을 허용했다.
승부치기를 진행한 연장 10회 초, 대표팀은 무사 1, 2루에서 최원준이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자칫하면 무득점으로 기회를 놓칠 수도 있는 상황. 타석에 들어간 류지혁은 와일드카드로 일본 대표팀에 뽑힌 마타요시 가즈키를 초구를 벼락같이 때렸다.
힘이 실린 타구는 도쿄돔 좌중간 펜스를 때리고 그라운드에 떨어졌다. 2루에 있던 주자가 홈을 밟으면서 대표팀은 1사 2, 3루 기회를 이어갔고, 하주석이 2타점 2루타를 때려 7-4로 앞서갔다.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면 류지혁은 '도쿄돔 대첩' 결승타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표팀은 10회 말 4실점 해 7-8로 아깝게 무릎을 꿇었다.
경기가 끝난 직후, 류지혁의 발걸음은 더그아웃이 아닌 마운드로 향했다.
끝내기를 내준 뒤 고개 숙인 이민호를 다독여 일으켰고, 그제야 동료들과 함께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류지혁은 이날 한일전의 숨은 주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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