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파놓은 군사용 토굴 '천연 냉장고' 변신
영동군 3곳 개발해 와인·장류·새우젓 숙성에 활용
(영동=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영동군 영동읍 매천리 야산에는 단단한 암반지대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파놓은 토굴이 여러 개 뚫려 있다. 일제가 탄약 보관용으로 만들었던 곳인데 확인된 것만 89곳에 이른다.
영동군은 방치되던 이 일대 토굴을 관광이나 산업시설로 활용하기 위해 2002년 형태가 양호한 3곳을 골라 현대식으로 개발했다.
바닥을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포장하고, 밀폐기능을 갖춘 출입문과 조명, 배수설비 등을 갖췄다.
길이 25m, 폭·높이 3∼4m의 토굴은 말 그대로 천연 냉장고다. 연중 11∼13도의 온도와 80% 안팎의 습도를 유지해 와인이나 발효식품 등을 익히는 데 제격이다.
첫 테이프는 토종 와인 '샤토마니'를 생산하는 포도주 제조업체 와인코리아(대표 윤태림)가 끊었다. 이 업체는 토굴 한곳을 임차해 포도주 숙성고로 전환했다.
어두컴컴한 토굴 속에서 향기 좋은 오크통에 담겨 숙성된 포도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유명세를 타 애호가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몇 해 뒤 이 지역에 공장을 둔 샘표식품이 장류 저장시설로 토굴을 임차했고, 2012년에는 산속 새우젓(대표 김종복)이 젓갈류 숙성고를 만들었다.
김장철인 요즘 가장 핫한 곳은 젓갈류가 보관된 토굴이다.
전남 신안 등지에서 옮겨진 새우젓 200여t이 보관되는 이곳은 최근 숙성과정을 직접 관찰하려는 소비자 발길이 이어지면서 체험 관광시설로 거듭나는 중이다.
업체 측은 판매·시식장 안에 토굴에서 익은 14가지 젓갈류를 맛볼 수 있는 식단까지 마련해두고 예약제로 체험객을 받고 있다.
김 대표는 "토굴서 익힌 새우젓은 오래 묵힐수록 짠맛이 사라지고 감칠맛이 깊어지는 게 특징"이라며 "한번 맛을 본 체험객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최근 체험문의가 급증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영동군은 토굴 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몇 해 전 임대료 부담을 덜도록 '공유재산 관리 조례'를 고쳤다. 농특산물 저장의 경우 한해 220만원이던 임대료는 30만원대로 낮춘 것이다.
군은 추가 수요가 있을 경우 남아 있는 토굴도 순차적으로 개발해 이 일대를 체험관광지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토굴 주변에는 과일나라 테마파크와 레인보우 힐링타운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다"며 "향후 토굴이 추가로 개발되면 이들과 한데 묶어 패키지 관광상품으로 선보이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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